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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보내신다 - 제 2과 - 2020년 9월 13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이사야 6장 1-13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0-09-08 (화) 03:34 조회 : 16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0년 9월 13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제 2과  

 

 

하나님은 보내신다             

 

 

학습구절: 이사야 6장 1절부터 13절까지   

 

성경진리:

하나님께서는 그의 주권적(主權的) 목적(目的)들을 깨닫고 선포하도록 백성들을 부르신다.  

 

주요교리인간  
오직 하나님의 은혜만이 사람들을 하나님과 거룩한 관계를 맺게 하며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적인 모습을 성취할 수 있게 한다 (엡 2: 4).

 

암송구절:  이사야 6장 8절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Then I heard the voice of the Lord, saying,

‘Whom shall I send? And who will go for us?’

And I said, ‘Here am I. Send me!’”       

 

 

시작하는 글:  

 

미국군대의 각 부서는 "어떤 것도 절대로 자원(自願)하지 말라”고 쓰여있는 양식이 있다.

그렇지만, 이사야가 왕이신 만군(萬軍)의 여호와를 대면했을 때, 그는 여호와께서 그에게 제시하신 사명(使命)을 맡겠다고 재빨리 자원(自願)하였다.

그것은 한 사람이 이사야가 행한 일을 경험할 때 일어나는 일이 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환상으로 이사야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셨을 때, 이사야는 자신이 망할 수 밖에 없는 죄인(罪人)임과 구원자(救援者)의 필요성(必要性)을 절실히 깨달았다.

여호와께서는 그의 죄를 깨끗게 씻어 주시고 그를 사명자로 부르셨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신을 계시해 주시고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실 때, 우리가 하나님께 나타낼 마땅하고 적절한 응답은 이사야의 것이 되고 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자신의 목적을 수행하기 위해 믿는 자들을 부르셔서 사용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본문 배경설명

 

이사야 5장 1절부터 6장 13절까지

 

이사야가 예언 사역으로 부름을 받은 일은 6장이 되기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른 예언서의 경우, 그 같은 부름은 첫 장에 나오고 있다. (렘 1: 1; 겔 1: 1 참조)      

명확한 이유가 주어지고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5장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5 장은 하나님의 특별한 포도원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경우, 포도원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돌보심과 투자의 비유가 되고 있다.

     그 비유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사물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포도원 주인은 포도원을 세우고 돌보는데 최고의 재료와 자원을 사용하였다.

비옥한 산비탈에다 땅을 파서 돌들을 골라내고 아주 좋은 포도나무들을 심었다.

짐승들이 들어오는 것을 감시하기 위해 가운데에다 망대까지 세웠다.

포도원에서 좋은 포도들이 맺기를 기대하는 모든 이유가 있었다.

그런데, 포도원에서 생산된 것은 기대와는 달리 좋은 포도들이 아니었다.

대신, 포도원 주인이 얻은 것은 들 포도들뿐이었다.

그러므로, 포도원주인에게 잘못이 없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물론 비유에서, 포도원은 이스라엘과 유다를 상징하고 있다.

비유에서 묘사되고 있는 것은 백성들이 믿음으로 잘 자라나며 좋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되고 있다.

더욱이, 그 비유는 단순히 농사짓는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업적인 거래에 대한 묘사가 아니다.

그것은 관계의 문제가 되고 있다.

그 같은 사실은 “내가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고 한 5장 1절의 설명에서 잘 묘사되고 있다.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모든 기회들은 그의 백성에 대한 그의 사랑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쁜 열매가 맺힌 것은 더욱 마음을 아프게 한 결과가 되었다.

     “들 포도” 혹은 ‘나쁜 열매”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5장 8절부터 12절에서, 우리는 백성들이 ‘전토에 전토를 더하며’ 자신의 이익에만 관심이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으며,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은 보지 아니하는 것을 보게 된다.  

그러한 태도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먼저 하나님을 찾고 구하기를 바라시는 그의 기대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특별히,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이 정의와 공의를 행하기를 바라셨다.

대신에, 하나님은 불의를 보셨고 불의를 당한 사람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다.

      포도원의 비유는 또한 백성들에게 다가오는 결과에 대한 경고가 되었다.

하나님은 포도원의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라고 선언하셨다 (5: 5 -6).

들 짐승들이 들어와서 한때 아름다운 포도원을 짓밟고 찢어 버릴 수 있었다.

다시 말해서, 외국 나라들이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징벌하시는 도구가 될 것이다.

이 포식자(捕食者)들은 포도원 주인이 불러서 오게 될 것이다 (5: 26 -30).

일련의 "화 있을진저"라는 말로 (5: 18, 20, 21, 22), 하나님은 그의 백성이 벌을 받고 있는 죄악을 분명하게 제시하셨다.

그것은 이스라엘과 유다 사람들이 하나님이 패배(敗北)했다고 생각할 가능성을 확실하게 배제시키는 것이 되었다.

대신에, 이스라엘과 유다가 외국 나라들에게 멸망을 당한 것은 하나님의 공의의 표가 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은 불의를 행하였다.

그들 백성들이 다른 나라의 침략을 받고 유배를 당하게 되는 것은 불의에 대한 공의의 심판이 되고 있다.

그것은 6장에서 이사야가 부름을 받게 되는 배경이 되고 있다.

앞으로 보게 되듯이, 한 선지자가 부름을 받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쁘고 즐거운 일이나, 우리가 정의하는 대로 생산적인 사역의 부름이 되지 않고 있다.  

 

 

학습구절 연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다 (이사야 6장 1 -4절)  

 

이사야는 환상에서 그에게 계시 된 하나님의 보좌(寶座)가 있는 방의 장면을 묘사하였다.

여호와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여호와의 위엄과 거룩함을 큰 소리로 선포하는 스랍들로 둘러싸여있었다.

그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하였다.

 

이사야 6장 1절


●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웃시야 왕이 죽던 해”라는 말은 이사야가 이 환상을 본 때가 주전 740년이 되고 있음을 알려주고 있다.

주전 792년부터 740년까지 52년동안 선정을 베풀었던 웃시야 왕이 죽었던 것이다.

아사랴라고도 불렸던 (왕하 15: 1) 웃시야는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며” (대하 26: 4), 그의 통치기간 동안에 영토도 어느 정도 확장되었고 백성들은 번영과 태평을 누렸다.

이 번영은 여로보암 2세의 통치 기간 동안에 북 왕국인 이스라엘이 이룬 업적과 일치되고 있다.

그러나, 여로보암은 웃시야보다 3년 전에 죽었고, 북 왕국은 흔들리고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이사야를 포함한 당시의 여러 선지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침체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아모스와 호세아 선지자는 백성들이 도덕적으로 부패하였고 번영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께 등을 돌렸는지를 오랫동안 지적해 왔다.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있어서, 물질적인 필요(必要)가 충족(充足)되고 생활이 안정되었을 때 사람들은 자기를 의지하고 도덕적으로 해이(解弛)해 지는 경향이 있었다.

현대에 살고 있는 신자들인 우리도 똑같이 그같은 유혹에 직면하고 있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갈 때, 당신은 어떤 면에서

하나님이 없이도 살아갈 수 있다는 자기 만족과 안일에 빠지게 됩니까?

 

     기업이나 국가에서 지도자가 바뀌게 되면, 그 구성원(構成員)들에게는 어떤 두려움과 불안감이 생기게 마련이다.

웃시야 왕이 죽은 후에 유다 백성의 경우가 바로 그랬던 것으로 보인다.

온 나라가 그같이 불안과 두려움에 쌓여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자신을 나타내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이사야가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것]”을 본 것은 크게 격려가 되었음에 틀림 없었다.

남 왕국의 왕이 죽고 북 왕국은 쇠퇴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하나님이 다스리고 계신 것이다.  

      여호와께서 자신을 이사야에게 계시하셨을 때, 이사야는 성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어떤 주석자들은 이사야가 제사장이었을 것으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확실치는 않다.

이사야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신 것을 보았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참된 왕이심을 나타내 주는 일이 되었다.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라는 말은 이사야의 환상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성전에 가득 차 있던 것을 나타내는 방법이 되고 있다.

 

이사야 6장 2절


●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그곳에는 천상의 피조물인 “스랍들”이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며 찬양하였다.

스랍들이 어떤 존재냐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스랍이란 단어는 복수형 명사로, 그 말에는 “불타는 자들”이라는 뜻이 들어있다.

불타고 있는 상태는 순결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순결을 상징하였다.

스랍들은 또한 “여섯 날개”가 달린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두 날개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는데, 그것은 경외감을 나타내었다.

또 다른 두 날개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는데, 그것은 겸손의 뜻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나머지 두 날개로는 날아다니며 하나님의 명령을 이행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경외감과 겸손, 그리고 기꺼이 섬기려는 뜻은 참 예배의 본질이 되었다.

그것들은 오늘날까지도 계속 참 예배의 본질이 되고 있다.

 

이사야 6장 3 -4절


●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 지라  


우리는 그곳에 얼마나 많은 스랍들이 있었는지를 알 수 없다.

스랍들은 성전의 성가대처럼 번갈아 가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찬양하였다.

거룩하다”라는 말은 불결한 다른 모든 것으로부터 구별되고 분리되는 것을 뜻한다.

히브리어에서 삼중(三重) 진술은 최상급(最上級)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니까, 그 말이 세 번씩이나 반복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이 지극히 거룩하신 분이심을 나타내주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라는 문구는 “온 땅이 하나님의 영광이 되고 있다”라는 말로 표현될 수 있다.

말하자면, 하나님의 영광이 어떤 방법으로 온 땅을 채우고 있다는 말이 아니라, 온 땅이 놀라운 창조자를 가리키고 있다는 뜻이다.

     때때로, 하나님의 임재는 주변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여호와 하나님이 연기와 불 가운데서 시내 산에 나타나신 일 (출 19: 16 -20), 이스라엘 백성이 성막을 봉헌했을 때 구름이 성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던 일 (출 40), 심지어는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을 때 천군 천사들이 하늘에서 내려와 찬양한 일  (눅 2: 13 -14)등이 될 수 있다.

이사야 6장에서는, 하나님의 임재와 스랍들의 창화하는 소리로 인하여 성전의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하였다. 

 

하나님은 죄를 사해 주신다 (이사야 6장 5 -7절)  

 

이사야 6장 5절


●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권능을 깨달았을 때,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고 소리쳤다.

이사야가 본 하나님에 대한 환상은 그에게 하나님의 본성을 보여주었을 뿐 아니라, 이사야 자신의 죄 많은 상태를 눈에 띄게 드러내 주었다.  

     “망하게 되었도다”고 말함으로써, 이사야는 자신이 죽을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전적으로 예상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성경은 죄 많은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고 “살 자가 없음”을 밝히고 있다 (출 33: 18 -20 참조).

거룩하신 하나님과는 달리, 이사야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었다.

이 경우에 있어서 , “입술”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을 나타내며, 안팎으로 인간 전체를 대표하고 있다.

실제로, 그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라는 말로, 자기도 부정하지만 백성들도 부정한 사실을 밝혔다.

그는 자기의 운명과 백성의 운명이 똑 같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사야 6장 6 -7절 


●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    그것을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자기는 망할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이사야의 깨달음과 두려움에 대한 응답으로, “스랍 중의 하나”가 “제단에서” 타고 있는 “”을 화저로 집어 가지고 그에게로 날아왔다.

스랍은 그 숯을 이사야의 “입술에 대며” 말하기를,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고 하였다.  

사하여졌[다]”라는 용어는 속죄소 위에 피를 뿌려 모든 죄가 가리움을 받던 속죄일과 관련되어 사용되었던 것이 되고 있다.

모든 더러운 것과 악한 것 그리고 죄가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로 가리워졌던 것이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대언자로 하나님을 위해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장면에서, 우리는 속죄가 필요한 인간의 죄된 상태와 그 같은 필요가 하나님의 은혜로 충족되고 있는 복음의 전조(前兆)를 보게 된다.           

 

당신의 삶 속에서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당신으로 하여금 죄를 용서 받고 대속함을 받을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해 주었습니까?

 

하나님은 부르신다 (이사야 6장 8 -10절)

 

이사야 6장 8절:


●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 구절에서 하나님은 처음으로 말씀하셨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께서 첫 번째 질문에서는 “내가”라는 단수 대명사를 사용하셨는데 반해, 두 번째 질문에서는 “우리”라는 복수형을 사용하신 점이다.

복수형이 삼위 일체의 세 인격체를 가리키는 것인지 아니면 왕권의 위엄을 나타내는 단순한 복수형인지에 대해 다른 의견들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것이 삼위일체 교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어느 쪽이 되었든, 그 질문은 이사야의 열정에 찬 반응을 이끌어내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 부르심에 응답하여 보냄을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로 부르시지만, 인간의 뜻을 존중하신다.

이사야는 자신의 뜻을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복하고 응답해야 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이사야의 결단과 응답에는 단지 두 마디의 말이 필요하였다.

그 두 마디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였다.  

그 같은 말로, 이사야는 선지자의 길을 택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길은 쉬운 것이 아니었다.

 

이사야 6장 9 -10절:


●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이사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사명은 두 가지가 되고 있다.

첫째는 가는 것이고, 둘째는 여호와 하나님의 메시지를 백성들에게 전하는 것이 되고 있다. 그런데, 그가 전할 메시지는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는 쉽고 즐거운 것이 아니었다.

그가 전할 메시지는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는 것이 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사야가 전할 메시지를 잘 들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경고해 주셨던 것이다.

     그것은 부모와 자식의 비유를 상기시켜 주는 일이 되고 있다.

한 아버지가 아들에게 방 청소를 하라고 지시한다.

아이의 방이 여전히 어지러운 상태로 남아 있을 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자기가 지시하는 말을 들었는지를 묻는다.

아들이 “”라고 대답하면서도 여전히 방을 청소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모두 아들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고 있다는데 동의한다.

듣는 것 자체만이 진정한 이해(理解)나 순종(順從)으로 이어지지는 것을 아니다.

같은 방식으로, 이사야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것이지만 그들은 경청하거나 변화 시키려고 노력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백성들의 그 같은 태도와 상태를 역설적(逆說的)으로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는 말씀으로 표현하셨다.

그런 다음, 우리는 언뜻 보기에는 매우 충격적으로 들리는 말씀을 접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에게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고 하셨다.

그것은 선지자가 자신의 설교를 통해 기대할 수 있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 되고 있다.

우리는 은혜와 용서의 하나님이 그 같은 조건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먼저, 여호와 하나님은 백성들이 어떤 반응을 나타낼지를 아시고 계셨는데, 그들이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회개하지 않을 것을 알고 계셨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이 참된 치유를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의 징계적인 심판을 경험하는 것임을 알고 계셨다.

성실하지 않은 회개는, 도리어 벌을 받게 된 것을 유감으로 생각하는 것은, 결코 마음의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

     예수님은 이 단원의 본문인 6장 9절과 10절을 그의 가르침에서 사용하셨다.

제자들에게 비유를 사용하시는 문제에 대해 가르치실 때, 그는 마태 복음 13 장 14절과 15 절에서 이들 두 구절을 인용하셨다.

예수님은 비유 뒤에 담겨있는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은 이사야가 묘사한 것처럼, 듣지만 실제로는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과 같다고 하셨다.

마찬가지로, 요한 복음 12장 40절에서, 예수님은 많은 사람들의 불신앙을 설명하기 위해 이사야 6 장 10 절을 인용하셨다.

사도행전 28장 26절과 27절에서, 바울은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한 그의 메시지를 믿지 않고 있는 것에 대한 증거로 이사야 6장 9절과 10절을 다시 인용하였다.

 

이사야가 받은 사명은 여러분에게 무엇 때문에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 메시지를 전해야겠다는 마음을 갖게 해 줍니까?

 

하나님은 인내하신다 (이사야 6장 11 -13절)

 

이사야 6장 11 -13절:


●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     중에 십 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여호와를 섬기려는 이사야의 열망(熱望)은 좌절감 혹은 심지어 절망감(絶望感)으로 바뀌었다.

이사야는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라고 물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선지자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이는 아무도 견딜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일을 더 이상 계속하기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이사야 선지자가 자기 백성을 사랑하고 있던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자기가 전하는 메시지가 동족에게 거절을 당하고 결과적으로 미움을 받고 고립되는 것은 감정적으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주는 일이 되었다.

     하나님께 주신 대답은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는 것이 되고 있다.

하나님의 대답은 고무적인 것이 아니었지만, 전적으로 소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형벌이 끝나기 전에 성읍들이 거의 완전히 황폐를 당하는 일이 일어나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성읍들이 황폐 당하는 것에서 살아남을 사람들은 정화의 과정이 끝날 때가지 남의 나라에 끌려가 유배생활을 할 것이다.

그 모든 사건들이 끝난 후에는, 이전 인구의 “십분의 일”만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십분의 일도 더 많은 심판을 받아 “황폐하게 될 것”이다.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가 베임을 당[한 것같이]” 모든 것이 없어져 버린 것처럼 보였을 때,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소망을 주셨다.

하나님은 남아있는 그의 백성을 베임을 당한 나무의 “그루터기”로 묘사하셨다.

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고 하셨다.

새로운 생명이 그 그루터기에서 자라날 것이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하나님은 거룩하시며, 그의 영광을 사람들에게 드러내신다.                              
●    모든 인간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가 필요하다.           
●    하나님은 그의 메시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기꺼이 전할 사람들을 부르신다.  
●    하나님의 사자(使者)들은 응답에 관계없이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의 메시지를 신실하게 전해야 한다.   

 

하나님은 환상으로 그의 거룩하심을 이사야에게 나타내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며,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이 거룩하신 분임을 나타내시는 방법에는 어떤 것이 있습니까?
 

반원들이 함께 이사야 6장 8절을 큰 소리로 읽으십시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이사야의 응답이 모든 신자들에게 논리적이고도 적절한 반응이 되고 있는지를 토론하십시오.
그러한 부름에 부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에 대해 어떻게 말할 수 있습니까?

 

신자들이 어렵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라는 그의 사명에 평생 동안 충성하는 것이 왜 그렇게 중요합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서 공부

우리는 11월 말까지 이사야서를 공부합니다.   

이사야서는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예언한 유일한 구약의 책이자 (7: 14) 그리스도께서 고난의 종임을 예언한 책이 되고 있습니다 (52: 13- 53: 12).
이사야서를 학습하게 되면, 이사야서가 구원의 교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좀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예배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의 방법이 됨을 보다 잘 이해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