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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통치권 - 제 11과 - 2021년 2월 14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6장 1 -11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1-02-13 (토) 02:24 조회 : 29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1년 2월 14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제 11과  

 

 

예수님의 통치권                  

 

 

학습구절: 누가복음 6장 1 -11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종교의식을 지키는 것보다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을 우선으로 삼으신다.     

 

주요교리: 기독교와 사회질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의(義)와 진리(眞理)와 형제사랑(兄弟愛)의 원칙(原則)의 지배를 받는 산업과 정부 그리고 사회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한다. (살전 3: 12).    

 

암송구절:  누가복음 6장 5절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Then Jesus said to them,

‘The Son of Man is Lord of the Sabbath.’”

 

 

시작하는 글:  

 

한 사람이 자기 집을 매우 밝은 색으로 칠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지역사회의 주택 소유자 협회 (homeowners’ association)가 문제를 제기하자, 그는 “내 집을 내 마음대로 할 권리가 있다”면서 반박하고 나섰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서 집 판매 계약서에 집의 외관을 바꾸는 것을 포함하여, 자신의 일부 권리를 포기하고 협회의 규정을 따른다는 조항이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자기가 원하는 대로 일이 되지 않으면 기분이 상해서 화를 내면서도,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인지 알려고 하거나 생각하지도 않고 있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바라는 것과 하나님의 뜻이 갈등을 빚을  어떻게 반응합니까?

 

 

본문 배경설명

 

누가복음 5장 33절로부터 6장 16절까지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있었던 바로 이전의 사건은 장기간 연속적으로 일어난 갈등의 하나가 되고 있다.

대부분의 상황은 종교 지도자들이 율법에 대한 그들의 해석을 고수할 것을 강요하려는 시도로 발생되었다.

그들은, 실제로는, 모세가 전해준 율법에 대한 하나님의 뜻과 의도를 잘못 해석하고 있으면서도, 하나님께 신실하게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이 죄를 사할 권세가 없다고 불평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며 식사를 한다고 비난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을 하지 않는다고 비난하였고,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지나가면서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은 것을 정죄하였다.

각 경우에 있어서, 바리새인들의 주장은 그들의 독선(獨善)과 참된 영적(靈的) 이해력(理解力)의 부족을 드러내는 일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그의 제자들이 금식을 하지 않는다고 바리새인들이 비난하는 것을 그들에게 더 큰 문제에 대해 가르치는 기회로 삼으셨다.

첫째로, 금식은 그 자체가 목적(目的)이 아니라, 깊은 애통이나 간절히 갈망하는 것을 표현하는 방법이 되고 있다.

둘째로, 바리새인들이 종교적으로 지키는 것들은 물려받는 전통들을 따르는 방법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성령님께서 행하실 새 방법들을 소개하셨는데, 그것들은, 새 옷을 고칠 때 헌 옷에서 한 조각을 잘라내어 고치지 않는 것처럼, 낡은 전통과 함께 엮어질 수 없는 것이 되고 있다.

    이번 주의 학습은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이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들을 고쳐주신 두 가지 실례(實例)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두 가지 사건은 모두 “안식일”에 일어났다.

첫 번째 사례는 밀밭에서 생긴 논쟁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그것을 안식일의 진정한 목적(目的)을 설명하는 기회(機會)로 삼으셨는데, 더 중요한 것은 “안식일의 주인”으로 자신의 특권(特權)을 주장하신 것이다.

    두 번째의 상황은 예수님께서 “오른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신 것과 관련되고 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그같이 하신 것을 반대하고 나섰는데, 이는 그들이 병을 고치는 것을 안식일에 금하는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사람의 문제에 대해 염려(念慮)하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뻐하지 않았다.        

그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부정할 수 없었지만, 질투심에 가득 차서 예수님을 제거할 방법을 의논하였다.

     예수님은 이러한 상황을 바리새인들에게 대응할 뿐만 아니라 그의 부름에 응답한 사람들을 훈련시키는 기회로 사용하셨다.

경우에 따라서는, 제자들은 바리새인들의 직접적인 비판과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모든 경우에,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이 적대자 들에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직접 개입(介入)하셨다.

장차,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박해를 받게 될 것이다.

6장에서, 예수님은 특별한 사역을 하도록 “열둘”을 부르셔서 “사도”로 임명하셨는데, 그들을 지도자로 준비시키는 일은 이미 시작되었던 것이다.

 

 

학습구절 연구

 

안식일에 일하는 문제 (누가복음 6장 1 -2절)  

 

 구약 성경은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곱째 날에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안식하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창 2: 2 -3).

나중에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똑같이 하도록 명하셨다 (출 20: 8 -11).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의 언약의 표징 중 하나가 되어,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구별하는 징표가 되었다.

그 명령에 순종하여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또한 하나님의 자녀가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 되었는데 반해, 불순종에는 엄한 벌이 따랐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의 중요성을 감안할 때, 주후 1 세기 무렵, 유대교 종교지도자들이 안식일에 허용되고 있는 활동과 허용되지 않는 활동에 대한 상세하고 엄격한 목록을 개발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누가복음 6장 1절


●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 가실새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으니  


안식일의 여행은, 유대인의 전통을 따르면, 2천 “큐빗”으로 제한되고 있었다.

요즘의 거리로 따지면, 그것은 0.5 마일을 조금 넘는 것이 되고 있다.

누가는 이전에 그의 독자들에게 예수님이 안식일에는 습관적(習慣的)으로 회당에 나오신 사실을 알려주었다 (눅 4: 16 참조).

그러나 복음서 저자인 누가는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이 특별한 안식일에 여행하고 있는 이유를 명시하지 않고 있다.

또한 누가는 바리새인들과 그 같은 충돌이 일어난 장소도 밝히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것이 갈릴리 지역의 어떤 장소, 어쩌면 예수님의 활동 중심지였던 가버나움 근처가 되었던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 특정(特定)한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 ’ 그의 “제자들이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었다]”.      

“밀밭”으로 번역된 헬라어 용어(用語)는 특정 유형의 곡물이 아니라 경작된 밭을 가리키고 있다.

반면에, "이삭”으로 번역된 말은 신약 성경에서 전형적으로 밀을 가리키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마찬가지로, 밀 이삭을 “잘라”내어 그것을 “손으로 비비어” 먹을 수 있는 알맹이로 분리해 낸 행위는 그것이 익은 밀밭이 되고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안식일에 대한 당시의 바리새인들의 엄격한 기준과 비판적인 눈으로 보았을 대, 예수님의 제자들은 추수를 하였고, 타작을 하였으며, 키질을 하였고, 음식을 준비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어떤 랍비의 전통에 따르면, 이들 네 가지는 모두 안식일에 금하고 있는 일이 되었다.

     당시에 곡식 밭은 보통 씨앗을 흩어 뿌리는 방법으로 파종했기 때문에, 밭에 줄이나 있지 않았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밭 가장자리를 따라 걷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그들이 소유하지 않은 밭에서 소량의 곡물을 따는 것은 도둑질로 간주되지 않았다.

여행자가 손으로 곡식을 따고 낫과 같은 추수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한, 전통은 그 같은 종류의 활동을 허용하였다.

실제로, 모세의 율법은 그러한 소량의 곡식을 따는 것을 명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신 23: 25).    

 

누가복음 6장 2절


●    어떤 바리새인들이 말하되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느냐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하고 있는 것을 보고 정죄하였다.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른 사람의 밭에서 이삭을 따는 행위에 대해 항의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제자들이 안식일에 그같이 행한 것을 정죄한 것이다.

동일한 활동이 다른 요일에 행해졌다면, 그것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고 허용되었거나 승인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의 전통(傳統)에 의하면, 예수님의 제자들은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율법은 안식일에 일하지 말 것을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출 20 : 8-11; 신 5:14).

더욱이, 구약 성경의 몇 구절들은 불을 피우는 일이나 (출 35: 3), 짐을 나르는 일등 (렘 17: 21 -22 )과 같이 금지하고 있는 일의 종류를 구체적인 예를 들어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상활동(日常活動)들은 안식일에 금지하고 있는 일로 성경은 명시(明示)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랍비들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들이 안식일에 금하고 있는 일로 정의(定義)한 구체적인 활동목록(活動目錄)을 만들었다.   

      고대 랍비들이 기록한 것들로, 1 세기 당시의 바리새인들이 주장하고 있던 관습들과 관행들을 반영하고 있는 기록물(記錄物)들을 보면, 안식일에 어떤 종류의 일들이 금지대상이 되었는지를 엿볼 수 있다.

탈무드에는 “안식일”(Shabbat)이라는 부분(部分)이 있고, 그것은 안식일에 하지 말아야 할 39가지의 일을 목록(目錄)으로 열거하고 있는데, 그 목록은 파종(播種)하는 일, 밭을 가는 일, 추수하는 일, 타작하는 일, 키질하는 일, 반죽하는 일, 양털 깎는 일, 실을 뽑는 일, 바느질 하는 일, 사냥하는 일, 잡은 짐승을 손질하는 일, 불을 피우는 일, 글을 쓰는 일, 연장을 사용하는 일, 및 짐을 나르는 일 등을 포함하고 있다.

후기에 생긴 한 목록은 첫 번째 목록의 39 개의 각 항목에다 그것과 관련된 6 가지의 일을 추가시켰다.

또 다른 목록은 안식일에 나무에 올라가는 일, 동물을 타는 일, 수영하는 일, 손뼉 치는 일, 춤추는 일, 및 약혼하는 일등을 금지하고 있다.

그 같은 금지된 활동들의 여러 목록에도 불구하고, 랍비들은 그들의 규칙에다 제한된 수의 예외규정들을 인정하였다.

예를 들어, 안식일에도 제사장들은 요구되는 직무들을 수행할 수 있었다.

치명적(致命的)인 위험(危險)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措置)를 취하는 일은 허용되었다.

다른 사람의 생명(生命)을 구하는 일도 허용되었다.

안식일에 출산(出産)하는 일과 할례를 베푸는 일도 허용되었다.

실제로,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일들과 생명이 위협을 받는 상황이나 인간의 능력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 대처하는 일은 예외(例外)로 간주되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밀밭에서 행한 것에 대해 바리새인들이 비난하며 문제를 삼은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들의 안식일 전통을 지키지 않고 안식일에 금하고 있는 일을 행한 것이 되고 있다.  

그들은 예외를 인정할만한 합당한 이유가 있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의 생각은 늘 하던 전형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사람들의 기본적(基本的)인 필요(必要)보다 자신들의 전통(傳統)에 더 큰 관심을 보이는 일이 되었다.  

그것은 또한 성경의 실제 명령보다 전통을 엄격하게 적용한 것을 보여주고 있다.

 

오늘날 어떤 종류의 종교적 전통들이 일부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경향이 있습니까?

성경의 명령에 순종  우리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주권을 존중해야 합니까?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 (누가복음 6장 3 -5절)

 

예수님은 제자들이 행한 일이 합당하고 바리새인들의 주장은 지나치게 제한적인 이유를 설명함으로써 바리새인들에게 응답하셨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으로부터 다윗이 그의 삶 속에서 행한 일을 한 예로 이끌어내어 자신의 주장이 정당함을 밝히셨다.

 

누가복음 6장 3 -4절:


●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이르시되 이 사람아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생각하여 이르되 이 신성모독 하는 자가 누구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바리새인들의 비난과 불평은 제자들에게 향한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예수님은 단지 제자들을 옹호하신 것만은 아니었다.

예수님께서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더 큰 영적 진리를 깨우쳐 주심으로 그들이 이를 이해하게 되기를 바라셨다.

     종교지도자들은, 적어도 표면적인 의미로라도, 성경의 전문가(專門家)가 되어야 마땅하였다.

예수님은 “읽지 못하였느냐”는 질문으로 성경에 대한 그들의 이해(理解)에 도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이 자신이 이야기하려는 성경의 사건을 알고 있다는 사실을 아셨지만, 그들이 “다윗”과 자기 제자들이 행한 일 사이의 유사점(類似點)을 보기를 원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그 특정한 사건(사건)은 다윗과 그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 일어났다.

예수님은 그의 이야기에 다윗을 등장(登場)시킴으로, 유대 역사에서 크게 존경 받는 인물을 사용하셨다.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은 다윗을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의 본보기로 생각하였다 (삼상 13: 14; 행 13: 22).   

다윗이 “자기 및 자기와 함께 한 자들이 시장할 때에” 행한 것으로 것으로 인해, 그가 행한 일이 인정을 받고 있다면, 제자들이 배고파서 행한 일도 그같이 인정을 받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다윗이 어떻게 해서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게 되었는지를 상기시켜 주었다.

하나님의 전”이라는 말은, 당시에 성전이 건축되지 않은 때였으므로, “성막”을 가리켰다.

이 사건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이라는 곳에서 일어났다 (삼상 21: 1 -9).

     다윗은 그를 죽이려고 했던 사울 왕을 피해 도망치고 있었다.

다윗은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그와 그의 부하들을 위해 떡을 좀 달라고 하였다.

그는 도망가고 있는 자신의 신분을 제사장에게 밝히지 않았다.

대신, 그는 자신의 목적(目的)을 속여서 전하였다.

유일하게 먹을 수 있는 것은 “진설병”으로, 그것은 여호와 앞에서 물려낸 “거룩한 떡”이었다.  

고운 가루로 특별하게 구워 만든 열두 개의 떡은 안식일 마다 항상 성막 안에 있는 떡상에다 새로 진설하여 여호와 앞에서 열두 지파를 대표하게 하였다 (출 25: 30; 레 24: 5 -9).

그러므로, 그 떡은 “진설병”으로 불려졌다.

     그 떡은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은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다윗은 “떡 다섯 덩이”를 요구했는데, 아히멜렉은 그에게 열두 개를 모두 준 것 같이 보인다 (삼상 21: 3, 6).

다윗은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었다.    

다윗은 성막에 혼자 들어갔었다.

함께한 자들”이란 말은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의 동행자들을 가리키고 있다 (삼상 21: 1 -2).

진설병은 매 안식일마다 새로 만든 것으로 바꾸어 놓았으며,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거룩한 떡은 오직 제사장들만이 먹을 수 있었다 (출애굽기 25:30; 레위기 24: 5-9참조).

사무엘 상 21 장 1 -6 절의 내용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히멜렉 제사장이 다윗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 상황에서 그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었고, 다른 떡이 없었기 때문에 다윗에게 거룩한 떡을 줄 수 밖에 없었던 것을 알고 있었다.        

요점은 아히멜렉 제사장과 다윗이 행한 것에서는 인간의 필요와 상황에 따라 율법의 엄겨한 적용에 예외가 허용될 수 있음이 암시되고 있다는 것이다.

 

누가복음 6장 5절:


●    또 이르시되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더라   


표현(表現)에 약간의 차이(差異)가 있기는 하지만, 마태 복음과 마가 복음 그리고 누가 복음은 모두 이 사건의 기록을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는 예수님의 주장으로 마치고 있다.

인자”라는 호칭은 예수님의 인간 성 또는 다니엘 7 장에 예언된 힘 있고 권세(권세)를 가진 메시야를 가리킬 수 있다 (단 7: 13 -14).

     “인자”라는 호칭이 예수님의 인간성을 강조할 때, 예수님의 주장은 마가 복음 2 장 27 절에 인용되고 있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라는 주제를 강조하고 있다 (막 2: 27 -28). 

따라서 그 같은 이해의 관점(觀點)에서 생각할 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안식일과 안식일에 관한 법을 인간에게 유익(유익)이 되도록 계획하셨지, 무거운 짐이 되거나 어려움을 줄 목적으로 만드신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계셨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식일에 대한 하나님의 더 큰 관심은 의식(儀式)이나 전통(傳統) 자체보다 사람들이 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다윗의 이야기를 언급하신 것은 그 같은 진리를 보여 주며 안식일에 그의 제자들이 밀 밭에서 행한 것을 정당화시키는 것이 목적이 되고 있다.

     마태복음서는 이 사건에 대해 추가(追加)의 내용(內容)을 제공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엄밀하게 말하면,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일을 함으로 안식일을 범했는데도 죄가 되지 않은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참조 마 12: 5). .

마태는 또한 예수님이 논쟁의 또 다른 면으로 바리새인들에게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고 말씀하신 것을 기록하였다 (마 12: 6).

그 말은 아무 설명이 없이 아주 간명한 것이지만, 그것은 예수님과 그의 사역이 성전과 안식일보다 월등하다는 것과 궁극적으로는 그 둘을 대체(代替)하는 메시야를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인자와 만민의 주가 되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을 경배하고 섬기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궁극적인 충성을 받을만하고 마땅히 받아야 한다.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예수님의 주권을 받아들이는 것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예배의 표현으로서 주의 날을 어떻게 더 잘 지킬 수 있습니까?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누가복음 6장 6 -11절)

 

안식일에 추수하는 일에 대한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밀밭 근처에서 일어난 일이 되고 있다.

후에, 예수님과 바리새인들 사이에 또 다른 논쟁이 회당에서 일어났는데, 이번에는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일이 문제의 중심이 되었다.

 

누가복음 6장 6 -7절:


●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를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니  


누가는 안식일에 추수하는 문제(問題)로 인한 논쟁(論爭)과 이 단원의 갈등사건(葛藤事件) 사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지났는지를 나타내지 않고 있다.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또 다른 안식일에 예수께서 회당에 들어가사 가르치실새”라고 설명하였다.

이 사건에 대한 세 복음서의 기록은 예수님께서 그날 어떤 성경구절을 읽으셨는지 어떤 주제로 가르치셨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모든 기록들은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오른손 마른 사람”을 만난 것에 초점(焦點)이 맞추어지고 있다 (마 12: 9 -12; 막 3: 1 -6).  

그날은 특별히 “오른 손 마른 사람이” 회당에 나와 있었던 것이다.

     그날 회당에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있었다.

이들은 이전에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비어 먹은 것으로 인해 예수님과 논쟁을 벌렸던 사람들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누가는 그들 종교지도자들이 “예수를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예수가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지 엿보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표준 새 번역 개정판).

엿보다”는 말로 번역 된 동사는 어떤 사람을 감시하기 위해 경계심을 가지고 가까이 머물러 있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 같은 표현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슬픈 현실은 영적 지도자로 자처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회당에 나온 실제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고 그의 말씀을 배우는 것보다는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와 그를 대적할 방법을 찾는 것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병자의 육체적 및 심적 고통이나 아픔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들의 관심은 단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를 지켜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전통에 따르면, 특별한 경우에는 안식일에 치료하는 것이 허용되었는데, 생명의 위협을 받는 상황이나 출산의 경우, 또는 남자 아이가 태어나서 8일째가 되어 할례를 받아야 하는 날이 안식일과 겹치는 경우에는 예외로 허용되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비록 심한 고통이 따를지라도, 병을 고치는 일은 안식일 다음 날까지 기다리는 것이 당시의 안식일의 규례가 되었다.

안식일을 어긴 죄는 심각했기 때문에, 출교를 당하거나 심할 경우 죽음까지도 당할 수 있었다 (츨 31: 14).

적어도, 종교 지도자들은 그같이 함으로 예수님의 명성과 영향력을 훼손시키거나, 그를 따르는 군중들의 수를 줄이며, 회당에 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었다.

 

누가복음 6장 8 -9절:


●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서거늘
●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며


누가는 다시 예수님께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아시고” 계신 사실을 밝혔다.

예수님이 그 다음으로 행한 것은 의도적으로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손 마른 사람”에게 “일어나 한가운데 서라”고 하셨다.

그 사람은 그 회당에 정기적으로 참석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회당에 있던 사람들은 그의 이웃들이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손 마른 사람의 문제와 고통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손 마른 사람은 예수님의 요구를 언짢게 생각했거나 불편하게 여겼을 수 있지만, 그는 곧바로 “일어나 [섰다].”

그는 왜 예수님이 그가 서 있기를 원하시는지 묻지 않았다; 그는 단순히 순종하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의 주의(注意)를 종교 지도자들에게 돌리셨다.

그들은 이 기회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를 원하였다.

예수님이 손 마른 사람을 고쳐주시면, 그들은 안식일을 범한다고 예수님을 고발 할 수 있었다.

다른 한편,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도와주시지 않으면, 예수님은 도와줄 힘이 없거나 동정심이 없다고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을 수 있었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묻노니” 라고 하신 예수님의 질문(質問)은 그들 지도자들로 하여금 그 상황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과 태도를 공개적으로 밝히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모세의 율법에 전문가(專門家)로 자처하는 그들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고 물으셨다.

“옳으냐”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의 문자적(文字的)인 뜻은 ‘율법적으로 맞느냐’ 또는 ‘허용되느냐’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님은 그들 종교지도자들에게 그들이 안식일에 허용하고 있는 황동들과 금지하고 있는 활동들이 어떤 것이 되고 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도전하셨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선택을 포함시키지 않으셨는데,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상황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실제로 악한 일이 되기 때문이다.  

 

누가복음 6장 10 -11절:


●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 지라
●    그들은 노기가 가득하여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니라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사람의 마른 손이 치유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사람의 그 같은 명백한 필요에 직면하여,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고쳐 주시는 선을 행하는 것을 실제로 부정할 수 있을까?

의심 할 여지없이, 그들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주장하시는 논리와 힘을 보았다.

그들은 예수님의 주장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반박 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그 사람의 필요(必要)에 주의(主意)를 돌림으로써 침묵을 깨셨다.

누가는 예수님이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라고 말했다.

그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예배자 들이 선과 악의 차이를 명확하게 이해하기를 원하셨다.

그들 모두는 손 마른 사람의 필요를 깨닫고 예수님의 말씀이 참됨을 인식할 수 있었다.

예수님은 예배자 들이 종교 지도자들의 위선(僞善) 뒤에 숨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또한 인간의 전통에 굴복하시거나 위협을 느껴 침묵하시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오른 손 마른 사람에게 “네 손을 내밀라”고 하셨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하니, “그 손이 회복”되었다.

회당의 모든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 선한 일이 행해지는 것을 목격하였다.

    그러나, 서기관들과 종교지도자들은 고침을 받은 사람을 위해 기뻐하는 대신에, 예수님에 대해 “노기가 가득하[였다].

이는 그들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려고 했는데, 도리어 자신들이 여러 사람들 앞에서 난처하고도 당황스러운 상황에 빠지게 되었기 때문이다.

누가는 그들이 “예수를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기 시작하니라”고 밝혔다.

그 같은 대화는 예수님과 나머지 회중들이 있던 회당에서 일어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주에 당신이 어떤 사람을 도울 수 있었던 방법들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당신의 응답은 당신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권을 어떻게 나타내고 있습니까?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어떤 사람들은 종교의식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    예수님은 그의 모든 창조물을 다스리는 주님이 되신다.    
●    신자들은 종교 의식을 행하는 것보다 인간의 필요를 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오늘 공부한 내용에 비추어서, 당신은 어떤 종교적 관습들과 의식들을 평가할 필요가 있습니까?
그 평가에 비추어 당신이 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당신의 종교 의식과 전통의 기준이 되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떻게 하면 당신의 종교적 의식들과 전통들은 창조물에 대한 예수님의 주권을 더 크게 반영 할 수 있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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