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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에 대한 사랑의 응답 - 제 12과 - 2021년 2월 21일 주일 장년성경연구 - 누가복음 7장 40 -50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21-02-21 (일) 07:46 조회 : 24

장년성경연구 지도자 교안
2021년 2월 21일 주일 용

 

번역 및 편집: 강 호길
hokilkahng@hotmail.com

 

제 12과  

 

 

은혜에 대한 사랑의 응답

 

 

학습구절: 누가복음 7장 40 -50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믿음으로 그에게 오는 모든 사람을 구원하신다.      

 

주요교리: 성자 하나님    

완전한 신이시자 완전한 인간이신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유일한 중보자가 되시며, 하나님은 그를 통하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신다 (갈 4: 4 -5; 고후 5: 19).    

 

암송구절:  누가복음 7장 50절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Jesus said to the woman,

‘Your faith has saved you:

Go in peace.’”

 

 

시작하는 글:  

 

대부분의 우리는 다시 한 번의 기회(機會)를 얻었다.

우리의 삶에는, 우리가 큰 실수를 하거나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 실수나 잘못을 과거의 것으로 보고 앞으로 나아가도록 도와 주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고, 우리가 앞으로 전진해 나아가도록 도움을 주었으며, 우리 자신을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그 사람을 더 높게 평가하게 하고 더 깊이 감사하며 사랑하게 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罪)를 사(赦)해주시고 새로운 생명과 삶을 주신 것에 대해 그를 사랑함으로써 응답해야 한다.

 

어떤 사람의 용서가 당신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본문 배경설명

 

누가복음 7장 1절로부터 8장 56절까지
 

     큰 자비는 큰 사랑을 낳는다.

이 주제(主題)는 이번 주의 학습구절의 특징(特徵)이 될 뿐 아니라, 예수님이 바리새파 사람인 시몬과 만찬을 함께한 사건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사건들을 채색해주는 특색이 되고 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쳐주신 일과 죽은 자를 살려주신 일은 이번 주의 성경본문구절들을 연결시켜주며 세워주는 책 꽂이 기능(技能)과 역할(役割)을 하고 있다.

그들 기적적인 사건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나타낼 뿐 아니라, 그의 자비로운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

    광야수훈을 마치신 후 (눅 6: 20 -49), 예수님은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다.

그 소문을 듣고, 유대인의 장로들이 로마 백부장을 대신하여 예수님을 찾아왔는데, 이는 백부장의 사랑하는 종이 병들어 죽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백부장이 좋은 사람이며, “우리 민족을 사랑하고 또한 우리를 위하여 회당을 지었나이다”고 하면서(7: 5), 도와주는 것이 좋겠다고 하였다.

예수님이 장로들과 함께 백부장의 집으로 가고 있을 때, 백부장은 사람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자기는 주님을 자기 집에 모실만한 자격이 없으니 “그저 말씀만 하셔서 내 종을 낫게 해주십시오”라고 간청하였다.

백부장의 겸손한 태도에 감동한 예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하시면서 주인의 믿음을 보시고 그 종을 고쳐주셨다 (7: 6 -10).

     얼마 지나지 않아, 예수님은 가버나움에서 서남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나인 성”으로 가셨다.

성문에 가까이 이르셨을 때, 예수님은 한 장례행렬을 만나셨는데, 죽은 사람은 한 과부의 외아들이었다.

예수님은 과부를 불쌍히 여기셔서, 과부에게 “울지 말라”고 하시고 장례행렬이 멈추자 관에다 손을 대시고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고 하셨다.

죽었던 과부의 아들이 “일어나 앉고 말도” 하자,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졌다 (7” 11 – 17).

     금주의 성경본문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신 또 다른 사건이 언급되고 있다.

그것은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리신 것과 열두 해 동안 혈루증으로 앓는 여인을 고치신 일이다 (8: 40 -56).

회당장인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자기 집에 오시기를 간청하였다.

이는 그의 “열두 살 된 외딸”이 병이 나서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예수님께서 회당장의 집으로 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갔는데 그들 중에 “열두 해를 혈루증”으로 앓으며 “아무에게도 고침을 받지 못하던 여자”가 있었다.

그 여인이 예수님의 뒤로 와서 그의 옷 가에 손을 대니, “혈루증이 즉시 그쳤[다]” (8: 44).

그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을 아신 예수님은 그 여인을 찾아내어 그녀에게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고 하셨다 (8: 48).

그 같은 일로 시간이 지체되는 동안에, 회당장의 집에서 딸이 죽었다는 소식이 왔다.

예수님이 그곳에 가시기 전에 소녀는 죽었지만, 예수님은 야이로의 집에 가셔서 아이를 살려주셨다.

      위에서 언급된 일들 사이에는, 금주의 성경본문은 예수님께서 마을과 마을로 다니시면서 사람들을 가르치신 일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특별히 씨 뿌리는 농부의 비유를 포함하여 (8: 4 -15), 예수님께서 비유로 설명하신 것을 강조하고 있다.

씨 뿌리는 비유는 복음의 씨를 뿌릴 만큼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가르치신 또 다른 이야기는 바리새인 시몬의 집에서 한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사건과 관련이 있다 (8: 36 – 50).

이 가르침은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과 죄를 사함 받은 것에 대한 한 여인의 사랑에 찬 반응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 사건에 얽힌 이야기와 비유는 이 과의 학습구절 연구에서 자세히 살펴보게 된다.

     그 외에도, 누가는 예수님의 가장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야만 하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역에 대해 이례적으로 의구심을 나타냈던 일을 기록하였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선포 한 침례 요한은 감옥에 갇혀있었다.

그는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예수님이 정말로 오실 메시야인지를 묻게 하였다 (7: 18 -35).

그 후에, 예수님의 가족들은 예수님에 대해 들은 모든 것이 걱정이 되어 예수님을 보러 왔다 (8: 19 -21).

두 경우 모두, 예수님은 자신의 자비로운 사랑의 행위와 믿는 사람들의 믿음의 응답을 가리켰다.

     누가는 또한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갈릴리 맞은편”으로 건너가시다가 광풍을 만나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셔서]” 잔잔케 하신 일과 (8: 22 – 25), “거라사인의 땅”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만나 그를 고쳐 주신 일을 기록하였다 (8: 26 -39).

 

 

학습구절 연구

 

사랑의 강한 힘 (누가복음 7장 40 -43절)  

 

누가 복음 7장과 8장에 기록 된 몇 개의 "믿음의 사건"들 중 가장 극적인 것은 자신의 죄를 마음 아파하며 통회하는 한 죄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강한 헌신의 마음을 표현한 이야기가 되고 있다.

그 일은 시몬이라는 바리새인의 집에서 예수님을 초청하여 열린 만찬 자리에서 일어났다.

예상치 못한 은혜와 죄 사함의 은총을 받은 사람은 만찬 자리에 초대를 받지는 않았지만, 어떻게 해서든 그 집에 들어와서 예수님께 접근 할 수 있었던 한 여인이었다.

 

누가복음 7장 40절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번 주의 학습구절이 되고 있는 예수님의 비유를 이해하려면 이야기의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예수님은 한 바리새인의 집으로 만찬에 초대(招待)를 받고 이를 받아들이셨다.

그는 이미 여러 번에 걸쳐 바리새인들과 충돌하는 좋지 않은 경험을 하였지만, 그는 그러한 경험들과 상황들이 시몬이라는 이름의 바리새인에게 사역하는 기회를 잃게 하는 요인(要因)이 되게 하지 않으셨다.

     이 사건(事件)과 예수님의 사역이 끝날 무렵에 일어난 또 다른 사건(事件) 사이의 유사점(類似點)으로 인해, 어떤 사람들은 두 사건을 서로 연결시키려고 한다 (마 26: 6 -13; 막 14: 3 -9; 요 12: 1 -8).

그러므로, 두 사건에 대한 자세한 비교(比較)와 설명(說明)이 필요하다.

두 집주인의 이름이 모두 “시몬”이 되고 있다.

첫 번째 사건의 주인은 바리새인 시몬이고(눅 7: 40), 두 번째 사건의 주인은 고침을 받은 나병환자 시몬이다 (마 26: 6).

두 이야기 모두 한 여인이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운 것으로 묘사하고 있다.

누가는 첫 번째 이야기에서 그 여인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는데 반해, 요한복음은 두 번째의 이야기에서 그 여인을 나사로의 누이인 마리아로 밝히고 있다 (요 12: 2 -3).

첫 번째 이야기의 배경은 분명히 갈릴리가 되고 있고, 두 번째의 이야기는 예루살렘 근처의 베다니에서 일어났다.

     더 중요한 것은 베다니에서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운 동기는 예수님의 죽음과 장례를 위한 상징적인 준비가 되었다.

누가 복음 7 장의 여인은 단순히 사랑의 동기(動機)에서 행하였다.

그녀는 악명(惡名) 높은 죄인(罪人)이었다.

특별히, 시몬이 그녀가 악명 높은 죄인인 것을 익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녀가 어떻게 그의 집에 들어올 수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그 당시의 그리고 그 지역의 전형적(典型的)인 식사관습(食事慣習)에 따라, 예수님은 낮은 식탁의 긴 의자에 옆으로 기대어 누운 자세로 식사를 하고 계셨다.

그 여자는 예수님의 뒤로 다가와 울며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자신의 머리털로 닦아서 말리기 시작하였다.

그런 다음, 그 녀는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며 옥합에 든 귀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다 부어서 발랐다 (7: 37 -38).

      예수님을 초청한 바리새인인 시몬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기를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곡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고 하였다.

표준 새 번역은 시몬이 “혼자 중얼거렸다”고 표현하고 있다 (7: 39).                       

     시몬이 마음으로 생각하였건 아니면 중얼거렸건 간에, 시몬이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를 아신 예수님은 그에 대한 대답으로 그에게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고 하셨다.  

 

시몬은 예수님이 어떤 종교적인 진리를 전할 것으로 기대했거나, 아니면 이 어색하고도 부자연스러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하며 자신을 정당화시키는지를 보자는 강한 관심이 생겼을 수 있다.

적어도 그는 초대한 손님에게 대하는 태도로, “선생님 말씀하소서”라고 대답하였다.

주인이 허락하자, 예수님은 주인인 시몬의 생각을 꿰뚫어 보심으로 자신이 메시야이심을 입증하였다.

 

누가복음 7장 41 -42절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은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예수님은 종종 비유를 사용하셔서, 사람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적 진리를 깨우쳐 주셨다.  

예수님은 후에 제자들에게 비유의 접근방법을 다음과 같은 말로 설명해 주셨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눅 8: 10).

     예수님은 “빚진 자가 ”이 있는 “ 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그것은 두 사람에게 돈을 빌려준 한 채권자(債權者)에 대한 비유가 되고 있다.  

이 비유의 영적(靈的) 진리(眞理)는 하나님이 채권자(債權者)가 되시고, 인간들은 채무자 (債務者)이며, 죄(罪)는 빚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서로 돈을 빌려줄 수 있었지만, 동족인 히브리인들 에게는 이자를 부과할 수 없었다 (출 22: 25; 신 23: 19).

그러나 타국인들에게는 이자를 부과 할 수 있었다 (신 23:20).

그런데, 예수님은 비유의 말씀을 시작하실 때, 비유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배경이나 빚의 성격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으시고, 채권자를 의도적(意圖的)으로 “ 주는 사람”으로 묘사하셨다.  

그 같은 사실에서, 우리는 이 채권자가 대출사업(貸出事業)을 하는 사람으로, 이자를 받고 돈을 빌려주었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1세기 당시의 로마 경제권(經濟圈)에서는, 대출(貸出)에 대한 이자(利子)를 부과(賦課)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허용(許容)되었고 심지어 규제(規制)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의 역사적 기록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대출자는 대출(貸出)에 대해 4 -6퍼센트의 이자율을 부과 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한 사람은 “오백 데나리온”을 빚졌고 다른 한 사람은 “오십 데나리온”을 빚졌다.             

두 사람이 지고 있는 빚은 모두 큰 금액이었다.

한 “데나리온”은 예수님 당시에 보통 노동자의 하루치의 임금에 해당하는 작은 은화였다.

심지어 “오십 데나리온”의 부채도 상당하여 거의 두 달의 임금에 해당되는 것이었다. 

그 금액의 십 배인 “오백 데니리온”의 부채(負債)를 진 것은 엄청난 금액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두 채무자들 중 어느 누구도 빚을 갚을 능력이 없는 것이다.

한 사람은 아주 가난하였고, 다른 한 사람은 큰 금액을 갚을 만큼 부유하지 못하였다.

두 채무자는 자신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과 심각한 결과(結果)에 직면(直面)한 것이다.

예수님은 두 사람의 상황을 단순하게 “갚을 것이 없음으로”라고 묘사하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비유를 놀라운 방향으로 바꾸셨다: “ 주는 사람”은 “[은혜롭게]   탕감하여” 주었다.  

“[은혜롭게탕감하여 주다”로 번역된 헬라어 용어(用語)는 상업적인 맥락에서 부채를 완전히 취소하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 주는 사람[]”이 일반적으로 행하는 일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실제로, 예수님은 주인인 시몬과 듣고 있는 다른 사람들이 그 같은 행동을 채권자(債權者)에게

전혀 기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후에, 예수님이 채권자가 행한 일을 죄 사함을 받은 이야기에다 적용 하셨을 때, 채권자가 행한 것은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으로 더 분명(分明)하고 적절(適切)한 일이 되었다.

상황을 간략히 설명하신 후에, 예수님은 시몬에게 질문하시기를 그의 생각에 두 채무자들 중 어느 누가 채권자를 더 사랑할 것으로 보느냐고 하였다.      

 

누가복음 7장 43절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둘 중에 누가 [채권자]를 더 사랑하겠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대한 답변은 너무나도 명백하고 예상되는 것임으로, 시몬은 예수님의 비유의 뜻을 어느 정도 감지하고 있었던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내 생각에는”라는 말은 예수님의 비유를 자기에게 적용할 때의 망설임을 나타내는 말이 될 수 있다.

그런 다음, 시몬은 “많이 탕감을 받은 자니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오백 데나리온을 빚진 채무자는 더 사랑하는 자로 분명히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며 죄를 사함 받은 것을 감사하는 여인이었다.

빚을 적게 진 사람은 시몬으로 덜 사랑하는 자가 되었다.

그렇지만, 이 비유의 주요 목적은 빚의 실제 금액이 아니라, 빚에 대한 각 채무자의 평가(評價)이다.

그 여인은 자신의 삶 속에 있는 죄와 예수님의 사죄의 필요성을 절감(切感)하고 있었기 때문에, 빚을 많이 지고 있는 사람들을 대표(代表)하였다.

다른 한편, 시몬은 자신의 독선적(獨善的)인 태도로 인하여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고, 결과적으로 사죄의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두 사람 모두 죄의 빚을 갚을 수 없는 무력한 채무자였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죄를 사함 받은 값을 어떻게 계산할  있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헤아릴  없는 선물에 어떻게 감사해야 합니까?

          

 

행함으로 나타난 사랑 (누가복음 7장 44 -47절)

 

시몬은 그 여인을 보고 그녀의 죄를 보았다.  

예수님은 그 여인을 보시고 그녀의 회개와 헌신을 보셨다.

시몬은 그 여인의 과거에 집중(集中)하였다.

예수님은 그녀의 현재의 사랑과 믿음의 행위와 그녀의 믿음이 허용하는 미래에 초점(焦點)을 맞추셨다.

 

누가복음 7장 44 -46절: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예수님은 시몬더러 “네 판단이 옳다”고 말씀하신 후,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 여자를 보느냐”고 물으셨다.

그 것은 어떤 면에서 불필요하고 쓸데없게 보이는 질문이 되고 있다.

이는 집 주인인 시몬이 처음부터 그 여자를 주목(注目)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몬은 실제로 그 여자가 예수님에게 행하는 것을 지켜 보고 예수님이 참 선지자라면 악명 높은 그 여자가 그같이 하도록 허용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예수님을 의심하기 까지 했던 것이다.

그러나, 시몬은 그 여자를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단지 악명 높은 죄인과 경멸의 대상으로 보았던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를 초청한 집 주인인 바리새인이 그 녀의 통회하는 마음과 애정 어린 행동에 비추어서 그 여인을 보기를 원하였다.

예수님은 즉시 손님에 대한 시몬의 부족(不足)한 접대(接待)와 그 여자의 겸손(謙遜)한 섬김을 대조(對照)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 여자는 예수님을 바로 뒤따라 들어와 보통 주인이 손님에게 예의를 갖추어 하는 일들을 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에, 시몬은 동료 바리새인들의 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었든지, 예수님께 대한 접대를 소홀히 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집주인은 손님이 오면 식사 전에 발을 씻을 수 있도록 물을 제공하였다.

이는 사람들이 샌들을 신고 먼지가 많이 나는 비포장도로를 걸어 다녔기 때문에, 집에 들어갈 때는 발을 씻는 것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손님으로 청함을 받아 그 집에 오셨지만, 주인은 손님에게 마땅히 베풀어야 될 최소한의 호의도 보이지 않았다. 

     반대로, 그 여자는 예수님의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 털로 닦[아서]” 말렸다.

실제로, 손님들의 발을 씻는 것은 그 집의 종들이 하는 일이었다.

그 여자의 행동은 모든 사회적 관습과 규례를 어기며 깨뜨리는 일이 되었다.

그녀는 초대받지 않고 그 집에 들어왔다.

그녀는 또한 가까운 친척이 아닌 남자에게 다가가는 일을 하였다.

그녀는 여러 사람들 앞에서 드러내 놓고 울므로,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의 남자들을 크게 불편하게 만들었다.

      유대인의 또 다른 관습은, 중동지역의 관습을 따라, 주인이 손님을, 특별히 만찬에 초대한 귀한 손님들은, 양쪽 뺨에 입을 맞추어 맞이하는 것이었다.

시몬이 예수님에게 그 같은 접대를 하지 않은 사실은 예수님에 대한 그의 낮은 존경심을 더욱 드러내주고 있다.

반면(反面)에, 그 여인은 예수님이 그 집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  

예수님에 대한 그녀의 강(强)한 사랑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도록 나타났다.

    세 번째의 대조(對照)는 그 여자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붓고 바른 일이 되고 있다.

당시에 손님의 머리에 기름을 붓는 것은 일반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 이상으로 깊은 존경의 표시가 되었다.

시몬은 예수님에게 그 같이 특별한 존경과 사랑의 뜻을 표하지 않았다.

반면에, 그 여자는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지상 생애가 끝날 무렵 베다니의 마리아가 했던 것처럼 넘치는 사랑의 행위가 되었다 (요 12: 1 -3).  

 

누가복음 7장 47절: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 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시몬이 예수님에게 주의를 돌리고 이제 예수님께서 하시려는 말씀을 관심을 갖고 듣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 졌도다”고 하셨다.

그것은 그 여자의 죄가 이미 사함을 받았다는 뜻의 말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동사의 시제를 보면, 그 여자가 이전에 이미 죄 사함을 받았으며, 그 사함 받은 상태가 계속되고 있던 점이 나타나고 있다.

이 구절의 말씀에서는, 그 여인이 예수님을 만난 것이 처음이 아닐 것이라는 점이 암시되고 있다.

본문에는 기록되지 않고 있지만, 아마도 이전에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 여자에게 죄 사함의 은총을 베푸신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성경 해석자들은 그 여자가 울며 예수님을 섬긴 것은 예수님께서 만찬 이전에 그녀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사역에 대한 감사와 기쁨의 표현이 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 같은 뜻은 “이는 그 [여자]의 사랑함이 많음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잘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죄를 사함 받은 시기가 아니라 죄 사함에 대한 반응이 되고 있다.

그 여자는 “사랑함이 많[았기]” 때문에 죄를 사함 받은 것이 아니라, 죄를 사함 받았기 때문에 사랑으로 응답했던 것이다.

      대조적으로, 시몬은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가 되고 있다.

 그 말은 시몬이 죄를 사함 받을 필요가 없다거나 그의 죄(罪)가 그 여자의 죄보다 훨씬 덜 심각하다는 뜻이 아니다.

시몬의 교만(驕慢)과 비판적(批判的)인 태도는 도리어 그에게 회개와 용서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드러내 주고 있다.  

시몬은 독선적(獨善的)인 태도로 인하여 그 여자가 경험한 죄 사함의 기쁨을 잃었다.

그러므로, 그 바리새인은 “적게 사랑하는 자”를 대표하였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죄를 사해주신 은혜에 대해 깊은 감사와 사랑으로 응답한다.

우리는 우리의 죄가 다른 사람의 범죄와 비교해서 평가(平價)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우리의 죄는 너무나 크고 엄청난 것이어서 그 대가는 예수님의 피가 요구되었다.

하나님이 우리를 너무나 사랑 하셔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아들을 세상에 보내 셨기 때문에 (요 3: 16), 우리는 예배를 통해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 곁에 두신 "지극히 작은 자”를 돌보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야 한다 (마 25: 40).  

 

당신은 예수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습니까?

이번 주에 당신은 그 사랑을 어떻게 나타낼 수 있습니까?

 

사랑과 믿음 (누가복음 7장 48 -50절)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하셨다.

그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은 속으로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면서 죄를 사할 수 있는 예수님의 권세(權勢)에 의문(疑問)을 품었다.    

 

누가복음 7장 48 -49절: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확실하게 단언을 할 수 없지만, 예수님은 만찬 이전에 그 여인을 만나셨고 그녀의 죄를 사해주신 것으로 보인다.

그녀의 악명 높은 과거를 감안할 때, 그 여자는 자연스럽게 사랑의 마음과 감사의 섬김으로 응답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 여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되풀이 하심으로, 계속해서 시몬에게 설명하셨다.

    우리는 그 만찬 자리에 예수님 외에 누가 초대를 받았는지 모른다.

이 이야기는 제자들을 언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란 말은 시몬의 바리새인 친구들이거나 다른 지인(知人)들로 생각될 수 있다.

그들은 예수님과 모세의 율법에 대한 시몬의 관점을 공유했을 것이다.

     그 만찬 자리에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은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라고 하였다.

그 말은 저희들끼리 귓속 말로 말하였다는 뜻이 되고 있다.

그들은 죄를 사해줄 수 있는 예수님의 권세에 대해 의문을 품고 도전하고 나섰던 것이다.          

 

누가복음 7장 50절: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4장 48절에서, 그 여인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각도를 바꾸어 좀더 자세히 설명하시기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그같이 말씀하심으로 그 여인에게 믿음으로 구원을 받은 사실을 분명하게 깨우쳐 주셨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죄를 사해주시고 구원(救援)을 하시지만, 그렇게 하시기 위해 믿음의 도구(道具)를 사용 하신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사도 바울은 그 같은 사실을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라는 말로 표현(表現)하였다 (엡 2: 8).

     그런 다음,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그 여자에게 “평안히 가라”고 하셨다.

믿음이 구원의 선행조건이라면, 마음의 평안은 구원의 부사물(副産物)이다.

그 여자는 죄 사함을 받은 것에 대해 사랑과 감사의 반응을 나타내는 목적을 달성하였다.

이제 그녀는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평안한 마음으로 삶을 살아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죄를 사함 받는 하나님의 은혜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시몬과 그 만찬 자리에 있던 다른 손님들은 종교적인 활동과 행위를 통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이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의 독선(獨善)과 비판적(批判的)인 태도는 이러한 접근 방식의 무익함을 보여주었다.

반대로, 그 여자는 자신이 의롭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의 죄를 보상 할 방법을 알지 못하였다.

그 여자는 단순히 예수님께서 자기의 죄를 사해 주실 권세와 회복시켜 주실 능력을 가지고 계심을 믿었다.

그 여자의 믿음이 그리스도께서 죄를 사해주실 수 있는 길을 열은 것처럼, 우리는 행위에 근거한 종교를 거부하고 그리스도만을 믿어야 한다.

 

무엇이 당신에게 죄 사함의 필요성을 깨닫게 해 줍니까?

믿음은 어떻게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문을 열어 줍니까?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신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강렬하게 나타내야 한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크신 죄 사함의 은혜 때문에 하나님을 사랑한다
    죄 사함의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받는다.     

 

시간을 내어 예수님을 믿기 전에 당신이 지고 있던 죄의 빚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은 예수님께서 죄를 사해 주신 것에 대해 어떻게 감사를 나타낼 수 있습니까?
 그같이 죄를 사함 받은 놀라운 일을 누구에게 말해 줄 수 있습니까?

 

당신과 당신의 장년 주일하교 반원들이 다른 사람들을 손님으로 접대할 수 있는 실용적(實用的)인 방법은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하면 그 같은 일들을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는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까?

 

 

 

 이 장년 성경연구 지도자 교재는 LifeWay에서 출간하여 보급하고 있는 Explore the Bible 교과과정의 학생용 한국어 교재를 가르치고 배우는데 도움이 되도록, 강 호길 목사가 LifeWay의 허락을 받아 영어 지도자 교재를 번역 및 편집한 것입니다.
그같이 허락한 LifeWay에 감사를 드립니다.
장년 성경연구 한국어 학생 교재는 LifeWay에서 주문하여, 장년 주일학교 시간에 혹은 목장이나 구역 모임에서 성경공부 교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