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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시다 - 제 1과 - 2019년 3월 3일 주일 -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교재 - 마가복음 1장 9 -20절

글쓴이 : 강호길 날짜 : 2019-02-26 (화) 11:56 조회 : 514

장년성경연구 교사 교안

2019년 3월 3일 주일 용  


제 1과



부르시다      



학습구절: 마가복음 1장 9 -20절


성경진리:

예수님은 사람들이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약속된 메시야이시다.  


주요교리:  침례  

그리스도인이 받는 침례는 예수 그리스를 믿는 자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물에 잠기는 의식이다 (마 28: 19-20).             


암송구절:  마가복음 1장 17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Come, follow me,” Jesus said,

“and I will send you out to fish for people.”     



시작하는 글:


존 글렌 (John Glenn)은 1962년에 최초로 지구궤도에 오른 우주비행사가 되었다.

그가 2016년 12월에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애도하였는데, 이는 그가 미국의 마지막 영웅들 중의 하나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요즘 진정한 영웅은 찾기가 쉽지 않다.

정치지도자들은 종종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로 보이고, 연예인들은 자유분방하게 사는 것 같다.

산업계의 거장들은 돈을 더 많이 버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 것처럼 보인다.


당신이 자라날 때 누가 당신의 영웅이었는가?

오늘 날의 유명한 인물들 중에서 누구를 어린이들에게 따를 만한 가치가 있는 영웅으로 지적해 줄 수 있겠는가?  설명해 보라.



본문배경설명 


마가복음 1장 1 절부터 20절까지


마가는 예수님에 대해 여러 가지 다른 관점과 방법으로 기록하기 시작했을 수 있다.

그는, 마태가 한 것처럼, 예수님의 족보와 탄생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을 수 있다.

그는, 누가가 한 것처럼, 천사가 마리아에게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소식을 전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시작했을 수도 있다.

그는, 요한이 한 것처럼, 예수님에 대한 어려운 신학적인 소개의 말로 시작했을 수 있다.

마가는 그들의 어떤 방법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예수님의 배경이나 그의 인간적인 출생에 대해 아무 것도 말하지 않았다.   

대신 마가가 한 것은 성인이 된 예수님을 소개하기 위한 간단한 무대를 설정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 가지 짧은 항목(項目)으로 시작하였다.

첫째로, 마가가 제시한 것은 그의 복음서에 대한 간략한 개요로,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는 말이 되고 있다 (1: 1).  

마가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메시야이시며, 그가 기록하고 있는 것이 놀라운 소식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믿고 있었다.

더 나아가서, 그는 독자들도 그같이 믿도록 설득하기를 원했다.

둘째로, 마가는 복음을 고대 유대들인 예언의 성취로서 묘사하였다 (1: 2 -3).

그는 말라기 3장 1절과 이사야 40장 3절은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기 위해 먼저 보냄을 받은 사자인 침례 요한에 대해 예언하며 증거하고 있는 것을 확신하고 그 구절들을 인용하였다.

침례 요한과 그의 사역이 오랫동안 하나님의 계획이었고 선지자들에 의해 예견 되었다면, 그가 준비하고 증거한 메시야의 삶과 사역은 얼마나 더 중요하겠는가!

셋째로마가는 침례 요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은 그가 전파한 회개의 메시지와 그가 베푼 침례의 사역, 그리고 그의 유별난 의복과 음식 등이 되고 있다 (1: 4 -6).

마가는 침례 요한이 전파한 메시지를 일부 인용하였는데, 그는 말하기를 자기보다 능력이 더 많고 더 크신 분이 오실 텐데, 자기는 물로 침례를 베풀고 있지만 그 분은 성령으로 침례를 베풀 것이라고 하였다 (1: 7 -8).  

마가가 그같이 설정한 무대 위에, 어른으로 성장하신 예수님이 등장하신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은 힘이 있고 강렬하였다.

이 복음서의 첫 번째 주요 부분인 마가복음 1장 1절부터 3장 6절까지는 예수님께서 그의 권세를 어떻게 나타내셨느냐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번 주의 학습은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그를 따르라고 부르시는 것으로 그의 권세를 어떻게 나타내셨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다음 주에, 우리는 예수님이 죄를 사해 주심으로 어떻게 권세를 나타내셨는지를 배우게 된다.



학습구절 연구                                


확증을 받으시다 (마가복음 1장 9 -11절)

마가는 1장 1절에서 복음은 다른 무엇보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예수”라는 이름은 그의 인간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리스도”라는 명칭은 메시야로서의 그의 역할(役割)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에서는 예수님의 신성(神性)이 강조되고 있다.  

예수님은 유일하게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이 되는 분이시다.    

복음에 대한 자신의 담대한 주장을 강화하기 위해, 마가는 즉시 구약으로부터 (1: 2 ~3), 그리고 침례 요한으로부터 (1: 4 ~8), 그런 다음 하나님 자신으로부터의 증거 자료들을 제공하였다 (1 : 9-11).


1장 9절


  • ●  그 때에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시고


그 때에”라는 말은 침례 요한이 유대 지방의 요단 강에서 사역하던 때를 가리킨다 (1 : 5).

누가복음은 침례 요한이 사역을 시작한 때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눅 3: 1 -2).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인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리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그 같은 역사적인 기준을 감안할 때, 예수님이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신 때는 주후 27 -29년 경으로 보인다.

예수께서 갈릴리 나사렛으로부터 와서”라는 말은 우리에게 그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약 90 마일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갈릴리의 작은 마을인 나사렛에서 자라나신 것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5마일 떨어진, 유대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지만, 그의 어머니인 마리아와 요셉은 예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나사렛에서 살았다 (눅 1: 26 -27; 2: 4 -5).

예수님의 가족은 아기 예수를 죽이려는 헤롯 왕의 위협으로 인해 잠시 동안 애굽으로 피했다가 나사렛으로 돌아가 살게 되었다 ((마 2: 13 -15, 19 -23; 눅 2: 39 -40).

요셉의 직업이 목수였으므로, 예수님은 청소년시절부터 청년기에 이를 때까지 그 일에 종사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마 13: 15, 19 ~ 23 참조).

어떤 성서 학자들은 예수님이 10대였을 때 요셉이 죽었으며, 예수님은 동생들이 가족을 부양할 만큼 자라날 때까지 목수 일을 계속하신 것으로 보고 있다.

어찌되었건 간에,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일을 해야 할 때가 된 것을 아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그 일은 예수님이 “요단 강에서 요한에게 침례를 받으(심으로)” 공적인 성격의 것이 될 것이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이 자기에게 침례를 받으러 오시기 전에 이미 얼마 동안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며 침례를 베풀고 있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이 침례를 받은 일이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는데 (마 3: 14 -15), 침례 요한은 그에게 침례를 받으시겠다는 예수님의 요구에 응하기를 주저하였다.

침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회개의 침례를 받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요한은 예수님에게 침례를 받아야 마땅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고 하시면서, 그같이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된다고 하셨다.  


1장 10 -11절


  • ●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 ●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물에서 올라오실새”라는 마가의 말은 예수님이 받은 침례가 물에 완전히 잠기는 형태가 되고 있음을 나타내주고 있다.

어원적(語原的)으로 ‘침례를 베풀다’라는 말은 ‘담그다’ 혹은 ‘던져 넣다’의 뜻이 되고 있다.

그러나, 마가는 예수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방법이 아니라, 침례를 받으신 후에 일어난 일에 강조점을 두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신)” 현상은 예상치 못한 전적으로 놀라운 것이었다.   

마가의 말에서는 예수님만이 성령님이 임한 것을 본 것으로 암시되고 있지만, 침례 요한은 후에 말하기를, 자기도 성령님이 임하는 것을 보고,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었다고 하였다.

요한이 또 증언하여 이르되 내가 보매 내가 보매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그의 위에 머물렀더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 (요 1: 32 -34).

이 장면에는 삼위일체 하나님 세 분이 모두 참여하였다.

성자 하나님은 침례를 받으셨고, 성령 하나님은 하늘로부터 내려 오셨으며, 성부 하나님은 성자 하나님을 확증하는 말씀을 하셨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확증의 말은 메시야적 예언인 시편 2: 7을 반영하며 마가가 그의 복음서의 첫 머리에서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부른 것을 확언하는 것이 되고 있다.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말은 고난을 당하는 주의 종에 대한 예언인 이사야 42:장 1절을 연상케 하는 말이 되고 있다.

복음서의 기록들에 의하면, 이 일이 있기 이전에는 예수님은 어떤 이적도 행하지 않으셨다. 

예수님은 성령님이 그 위에 임하시고, 아들을 기뻐하신다는 성부 하나님의 확증을 받으신 후에,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셨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시험을 받으셔야 되었다.


시험을 받으시다 (마가복음 1장 12 -13절)  


1장 12절:


  • ●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이라는 말은 마가가 즐겨 쓰는 용어의 하나로, 그의 복음에서 40여 번에 걸쳐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 그 말은 예수님이 침례를 받자마자 곧 성령님에게 이끌리어 광야로 나가신 것을 가리키고 있다.

또한 마가는 “”이라는 말로, 예수님이 침례를 받은 일과 시험을 받은 일이 밀접하게 관계되고 있음을 강조하였다.

몰아내다”로 번역된 말은 억지로 혹은 강요에 의해 시킨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필연성 혹은 불가피성을 뜻하는 말이 되고 있다.

성령님은 필연성과 긴박성에 의해 예수님으로 하여금 광야로 나가 사탄을 만나게 하셨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제 경험하게 될 것은 지체될 수 없는 긴박한 것이었다.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과 사명을 성취하는 일등의 중요한 문제들을 직면하여 하였다.

요단 강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사람이 살지 않는 거친 광야가 있었다.

마태와 누가와는 다르게, 마가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외롭게 지내는 동안 금식을 하셨다고 언급하지 않았다.


1장 13절:


  • ●  광야에서 사십 일을 계시면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 천사들이 수종들더라


마가는 예수님이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일을 한 구절로 간략하게 요약하였다.

그는 전반적인 시험의 몇 가지 주요한 면을 간략하게 묘사하였다.

첫째로, 예수님은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다.

구약시대부터 광야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충성심을 입증하는 장소로 여겨지게 되었다.

모세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신 8: 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의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침례 요한이 광야에서 예언의 말씀과 사명을 받았던 것처럼 (마 3: 1, 막 1: 3 ~ 4, 눅3: 2 ~ 6, 요 1: 23), 이제 예수님은 사탄과 영적 싸움을 싸우시기 위해 고독한 광야로 들어가셨던 것이다.

둘째로, 예수님은 광야에서 “사십일”을 지내셨다.

장소와 마찬가지로, 이 특정한 시기도 성경에서 신학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모세는 계명을 받을 때 하나님과 산에서 40일을 밤낮으로 두 번씩이나 보냈다 (출 24: 18; 34: 28).

선지자 엘리야는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을 만났던 곳인 거룩한 산에까지 가기 위해 40 일 동안 밤낮으로 걸어갔다. (열왕기 상 19: 8).

부활하신 후에. 예수님은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승리하신 것을 보여주시고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해 주셨다 (행 1: 3).

마태복음 4장 2절과 누가복음 4장 2절은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시는 동안 금식을 하셨다고 밝히고 있다.

셋째로, 예수님은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고발자” 혹은 “대적자”를 뜻하는 히브리 이름인 “사탄”은 하나님과 그의 목적들 그리고 그의 백성들을 적대하는 강하고도 사악한 영적 존재이다.

그의 주요 계략 중의 하나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이브에게 한 것처럼, 사람들을 유혹하여 죄를 짓게 하는 것이 되고 있다.

야고보서 1장 13절은 아버지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한다.

그런데,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이 되셨고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그는 “모든 일에 우리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다)” (히 4: 15).

신약 성경에서, 유혹 하다는 용어(用語)는 ‘시험 하다’라는 말을 뜻할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과 믿음의 성장을 위해 시험하신다.



한 눈에 보는 마가복음

저     자:  마가 요한, 마리아의 아들, 바나바의 사촌

역사배경: 전통에 의하면,  마가는 그의 복음을 로마에서 기록하였다.

             내용은 베드로의 증언에 기초되고 있다.   

문학양식: 행동과 행위가 강조되고 있다. “곧” 혹은 “즉시”가 주요 용어가 되고  

             있다. 예수님은 항상 활동하고 계신다.

주요주제:  예수님의 정체성,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값비싼 제자의 길.



복음을 듣다 (마가복음 1장 14 -15절) 


1장 14 -15절

  • ●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 ●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받으라 하시더라


예수님이 시험을 받으신 후 갈릴리에서 복음전파 사역을 시작하시기 까지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났을까?

마가는 그것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침례 요한은 붙잡히기 전까지(6: 14) 수개월 동안 회개의 전파사역을 계속했던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요한복음 1장 29절부터 4장 42절에 기록된 사건들은 이 기간 동안에 일어난 것으로 결론짓고 있다.

구약 시대 당시에, 갈릴리는 작고도 외진 지역으로, 결코 중요한 곳이 되지 못했다.  

그렇지만, 그곳은 예수님이 자라나신 곳으로, 누구보다도 그가 잘 아는 지역이었다.

예수님은 그곳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복음”을 듣는 것임을 알고 계셨다.

좋은 소식”이라는 말은 “유앙겔리온”(euangelion)으로, 전통적으로 “복음”이라는 말로 번역되고 있다.

전파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반드시 종교적인 용어로만 쓰여진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전령자가 왕으로부터 메시지를 전달할 때처럼, 큰 소리로 정보를 발표하는 것과 관련이 있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지역의 사람들에게 전파하신 “하나님의 복음”은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받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전파하신 그 말씀에 관심을 갖고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때가 찼고” 라는 말은 수세기 동안의 기다리던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여기서 “때”라는 용어는 기간 혹은 연대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시기 혹은 기회를 가리키고 있다.

차다”라는 말은 가득 찼다는 말로 이해될 수 있다.

하나님의 나라”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왕인 메시야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킨다.

메시야가 이미 오셨고 일을 시작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사람들은 그 왕을 따르고 그의 메시지를 믿으라는 초청을 받았다.

예수님이 마태복음 12장 28절에서,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고 하신 말씀은 그 같은 뜻을 나타내고 있다.  

“회개하고 믿으라”는 말은 하나님 나라의 실체에 비추어, 예수님께서 요구하시는 응답을 가리킨다.

왕국이 가까이 왔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것을 무시해 버리지 말아야 하였다.

행동이 요구되었다.

회개는 돌이키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죄 사함을 구하는 것을 뜻한다.

믿는다는 말은 돌아오는 것을 뜻한다.

메시지의 진실성을 신뢰하는 것이다.

복음”은 구원의 조건으로 믿어야 할 내용이다 (고전 15: 1 -7).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믿어야 할 대상이 되신다.


주를 따르다 (마가복음 1장 16 -20절)


1장 16 -18절:


  • ●  갈릴리 해변으로 지나가시다가 시몬과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 ●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하시니
  • ●  곧 그물을 버려 두고 따르니라 


갈릴리 해” 혹은 ‘갈릴리 바다’는 길이가 14 마일과 넓이가 6 마일 정도 되는 내륙의 호수이다.

그 호수에는 어업이 성행하였다.

구약에서 그 호수는 “긴네렛 해”로 불렸고 (민 34: 11), 복음서들에서는 “게네사렛 호수”와 “디베랴 호수”로 불리기도 했다 (눅 5: 1; 요 21: 1).

시몬”과 “안드레”는 형제로 갈릴리 바다에서 어업을 하였다.

우리는 다른 복음서에서 그들이 요나의 아들이며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는 어선을 소유하고 있던 것을 알고 있다 (마 16: 17, 누가 5: 3 -4, 요 1: 42).

예수님은 시몬을 "게바”(아람어) 또는 “베드로” (헬라어)라고 부르셨는데, 그 둘은 다 “반석”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그것은 시몬이 제자들과 초기 기독교 운동의 지도자로서 성취해야 할 기본적인 역할을 나타내 주고 있다.

수십 년 후에, 베드로는 신약성경에 들어있는 것으로, 그의 이름을 딴 두 서신을 기록하였다.

더욱이, 그는 마가 복음의 구전출처(口傳出處)였을 가능성이 크다.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를 잡는 어부인 그 두 형제에게 “나를 따라 오너라”고 초청하셨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예수님 당시에 ‘랍비’로 알려졌던 유명한 유대 교사들이나 헬라 철학자들과 같은 일반 사회의 교사들은 제자들을 적극적으로 모집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과 제자가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한 교사의 제자가 되도록 허용되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가 먼저 제자 삼는 일을 시작하시고 사람들을 제자로 부르셨다.

그것은 그가 구원으로 초청하는 것과 같은 성격이 되고 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죄를 회개하고 그를 믿으라고 초청하신다.

사람들은 그 초청에 대해 어떻게 응답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고 하신 예수님의 약속은 그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초청하여 예수님을 믿고 따르게 하는 역할에 대한 강력하고도 놀라운 비유적 표현이 되고 있다.

즉 그들은 복음 전도자들이 될 것이다.

실제로, 물고기는 초기 기독교에서 그리스도인을 상징하는 비유적 표현의 하나가 되었다.

이는 헬라어로 물고기라는 “익두스’는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고백하고 있던 신앙고백인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의 머릿글자를 의미했기 때문이다.     

구약에서, 사람들을 낚는다는 비유적 표현은 그들을 정죄하는 뜻이 되고 있다 (렘 16: 16-18).

예수님과 제자들에게, 사람을 낚는 목적은 사람들을 정죄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되고 있다.

우리가 유의할 점은 마가는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도록 요구 하는 것을 자신이 본으로 보이고 있는 것을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의 부름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또한, 중립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찬성이냐 반대냐의 선택과 결정이 있을 뿐이다.

시몬과 안드레의 경우,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다.

예수님의 초청에 대한 그들의 응답은 즉각적이고도 확고한 것이었다.

시몬과 안드레는 예수님이 몸을 입고 세상에 계시는 동안 그와 함께 믿음의 생활을 하며 신앙훈련을 받는 특권을 누렸다.

그러나 수십 년 후에, 시몬 베드로는 그의 독자들에게 예수님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의 삶의 좋은 부분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이 됨을 상기시켜주었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밷전 2: 21).


제자들이 그들의 그물을 버리고 따른 것은 제자직분의 대가를 상징한다.


1장 19 -20절


  • ●  조금 더 가시다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
  • ●  곧 부르시니 그 아버지 세베대를 품꾼들과 함께 배에 버려두고 예수를 따라 가니라


예수님은 조금 더 가시다가 야고보와 요한이 배에서 그물을 깁고 있는 것을 보셨다.

세베대의 아들이었던 야고보와 요한은 형제로, 후에 초대 교회의 사도이자 지도자로서 두각을 나타냈다.

야고보는 열 두 사도 중에서 최초로 순교한 사도가 되었다 (행 12: 2).

오랜 후에, 요한은 신약에 포함된 다섯 권의 책을 기록하였는데, 그것들은 요한복음과 네 서신 그리고 계시록이 되고 있다.

누가복음 5장 1 ~11 절은 평행 구절인 본문의 “그들도 배에 있어 그물을 깁는데”라는 마가의 간결한 말을 좀더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이 시몬의 배에 앉으셔서 무리들을 가르치시고, 밤새도록 아무 것도 잡지 못한 그 배를 바다 갚은 데로 보내어 그물이 찢어지도록 많은 물고기를 잡게 하신 일 후에 일어났다.

그것이 네 명의 어부가 그물을 씻고 기우며 바빴던 이유이다.

더구나, 시몬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예수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자백하였다 (눅 5: 8).

마가는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셨을 때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직접 인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예수님이 시몬과 안드레를 부르셨을 때 하신 말씀과 같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아버지 세베대를 일꾼들과 함께 배에 남겨 두고 곧 예수님을 따라갔다 막 1: 20).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예수님은 하나님의 완전한 아들이심을 믿는다.

●  우리는 예수님이, 유혹과 유혹하는 자까지도 이기신, 전능하신 분임을 확신 할 수 있다.

●  예수님은 죄를 회개하고 그를 믿으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  예수님의 부르심에는 우리가 한 때 신뢰했던 것을 남겨두고 신뢰의 표로 그를 따르는 것이 포함되고 있다.  


당신은 유혹을 받을 때 어떤 방법으로 대처하고 있는지를 설명해 보라.

당신은 삶의 그 영역에서 어떻게 하면 다르게 대처할 수 있었는가?

사탄을 이기신 예수님의 승리는 당신이 유혹과 맞서 싸울 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당신의 삶 속에서 하나님이 원하지 않으시는 것들을 진정으로 회개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은 무엇인가?

당신은 그 같은 장애물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어떤 조치를 취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