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년성경연구 교사 교안
2019년 4월 14일 용
제 7과
예수님의 명령
학습구절: 마가복음 9장 14 -27절
성경진리:
예수님을 믿는 믿음은 삶의 모든 영역의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주요교리: 인간
최초의 인간은 사탄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여 그의 무죄의 본성에서 타락하게 되었고, 그같이 함으로 그의 후손들은 죄된 본성과 환경을 물려받게 되었다 (사 6: 5).
암송구절: 마가복 8장 29절
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But what about you?’ he asked.” ‘Who do say I am?’ Peter answered. ‘You are the Messiah.’”
시작하는 글:
우리는 살아가는 동안 여러 가지 역할과 일을 맡아서 한다.
우리는 자녀들과 부모들이 되기도 하고, 친구와 배우자가 되며, 직장 동료와 같은 교회의 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코치들과 선수들이 되며, 교사들과 학생들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가정에서, 직장에서, 그리고 사업장에서 생활을 한다.
다양한 삶의 현장에서 우리는 그것에 알맞게 여러 가지 방법으로 행한다.
그렇지만, 변하지 않는 한 가지가 있는데, 예수님이시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님을 가리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한다 (히 13: 8).
예수님은 우리의 삶의 모든 부분과 관계되고 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이 우리 삶의 모든 면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삶을 살지 않고 있다는 증거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라” (엡 2: 10).
나는 이 교안을 준비하면서 이 말씀을 나의 삶에 적용할 때가 많다.
하나님께서 강 호길을 성경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하게 계획해 주시고, 번역의 은사를 주셔서 장년성경연구 교사용 영어 교재를 번역하게 해 주시고 (약 75%) 또한 지난 수년 동안 한 주 일찍 끝내야 하는 일을 늦은 적은 있지만 빠뜨린 적은 없게 매주 감당할 수 있도록 열정과 건강과 시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몇 사람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이 교안을 사용하여 매 주일마다 장년주일학교 반에서 반원들을 가르치는 교사들로 인하여 고마워하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부족한 자를 불러서 귀한 사역에 사용해 주시는 주님께 감사한다.
앞으로의 목표는, 번역이긴 하지만, 교사들이 교사용 교안을 두 주 일찍 받아서 준비하도록 돕는 것과 성서적으로 그리고 교리적으로 좀 더 정확하고 바르게 준비하는 일이 되고 있다.
본문배경설명
마가복음 8장 2절부터 9장 50절까지
마가복음 8장 27절부터 30절까지는 마가복음서의 분수령(分水嶺)으로 불려오고 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갈릴리 바다에서 북쪽으로 약 25마일 떨어진 곳인, 헤르몬산 기슭에있는 “빌립보 가이사랴” 지역에 가셨던 때 생긴 일을 묘사하고 있다.
예수님이 그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여러 마을로 다니실 때, 한 번은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는 말로, 그들이 단기 선교팀으로 나가서 사역했을 때 (6: 7 -11) 사람들이 자기에 대해 한 말을 물으셨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수님을 침례 요한이나 엘리야 혹은 선지자 중의 하나라고 한다고 하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는 질문으로 그들이 자기를 어떻게 알고 있는지를 물으셨다.
이에 베드로가 제자들을 대표해서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고 대답하였다.
베드로의 대답은 예수님이 메시야이시라는 것이었다.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그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한 것을 비로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하신 계기가 되었다 (8: 31 -9: 1).
예수님은 제자들(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복음을 위한 자기 희생의 삶을 살라는 요구를 받아들이라고 도전하셨다.
예수님은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서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다.
9장 2절부터 13절에서, 마가는 예수님이 한 높은 산에서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 지켜보고 있을 때에 변형되셨던 일을 기록하였다.
예수님의 얼굴은 광채가 나며 눈이 부셨고, 그 옆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말하셨다.
베드로는 예수님에게 권하기를 세 분을 위해 초막 셋을 짓고 자기들도 그곳에 남아 있겠다고 하였다.
더욱이,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말로 그를 하나님의 아들로 확증했던 하늘의 음성이(1: 11 참조) 다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말씀으로 다시 확인시켜 주었다.
변형사건이 끝나자, 예수님은 세 제자를 데리고 산을 내려 오시면서, 그들에게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명하였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알지 못하였으므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라는 무엇을 뜻하는지를 서로 문의하였다.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의 말씀을 들어, 그가 많은 고난과 멸시를 당하게 될 것을 그들에게 상기시켜 주셨다.
마가복음 9장 14 -29절은 이 과의 학습구절을 담고 있다.
세 제자들을 데리고 변형되셨던 산에서 돌아오셨을 때, 예수님은 산 밑에 남아있던 제자들이 더러운 귀신에 들린 한 어린 아이를 놓고 몇몇 서기관들과 열띤 변론을 벌리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예수님은 그 아이의 아버지에게 믿음을 가지라고 하신 다음, 그 아이에게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 주셨다.
제자들이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라고 묻자, 예수님은 믿음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더러운 귀신을 쫓아낼 수 없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가시면서도 계속해서 그들에게 임박한 고난과 죽음에 대해 말씀하셨다. (9: 30 ~ 32).
예수님은 제자들이 이기심에 차서 서로 첫째가 되기를 원하는 것을 꾸짖으시며 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겸손에 관해 가르치셨다 (9: 33 ~ 37).
예수님은 또한 다른 사람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선을 행하려고 하는 것을 금하지 말라고 하셨다 (9: 38 ~ 50).
제자들은 누구든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방해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들의 책임은 세상의 소금이 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들은 서로 화목해야 되었다.
학습구절 연구
무력한 세대에게 하시는 명령[마가복음 9장 14 -18절]
9장 14 -15절
- ●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서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 ●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베드로와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던 예수님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변화 산의 사건으로 부르는 산 꼭대기의 체험을 막 끝마치셨다.
그것은 영광스러운 일이었고,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는 그곳에 남아서 살고 싶어하였다.
산 밑은 혼란과 절박한 필요가 있는 세상이었다.
금주의 본문은 영적으로 절정에 이르는 체험을 한 후에 자주 영적인 도전에 직면하게 되는 사실을 보여준다.
마가는 이전에 다른 예를 제시한 적이 있었다.
마가는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신 후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는 소리로 그에게 말씀하신 일과 함께 성령님의 이끌림을 받아 광야로 나가셔서 40일 동안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일을 기록하였다 (1: 9-13).
영적인 도전은 종종 영적으로 정상에 오르는 체험을 한 후에 온다.
마가는 산 위에 올라가지 않은 아홉 명의 “제자들”이 “서기관들”과 신학적 논쟁(“변론”)을 벌리고 있는 것을 언급하였다.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이들 유대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가르치시고 행하시는 일들을 지적하면서 무슨 권세로 그같이 행할 수 있는지를 아홉 명의 제자들에게 따지며 질책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것은 자주 등장하는 문제와 도전이 되었다 (2: 6, 16, 24, 3: 2, 22, 7: 5, 8: 11-12 참조).
즉각적인 맥락에서, 그들은 또한 아홉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에게서 악령을 쫓아내는데 실패한 것을 조롱했을 수 있다 (9: 18).
아홉 명의 제자들은 실패에 직면하여 부끄러움과 무력감에 차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당신은 "영적 정상”에 올라간 직후에 "영적 계곡"으로 떨어지는 경험을 한 적이 있는가?
그 같은 일은 다른 사람들과의 변론 혹은 논쟁을 수반했는가?
당신은 그 같은 상황에서 무엇을 배웠는가?
그 같은 경험은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얼마나 전형적인 일이 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은 변화 산에서의 사건으로 인해 이튿날까지 그곳에 계시지 않았다 (눅 9: 37).
따라서, “온 무리”가 예수님을 보았을 때, 그들은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였다.
아홉 제자들은 예수님이 산에서 내려 오셨을 뿐 아니라, 관중들의 시선과 주의가 자기들에게서 떠나 예수님에게로 옮겨진 것으로 인해 안도했을 것이 의심의 여지가 없다.
9장 16 -18절
- ●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 ●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 ● 귀신이 어다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려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상황을 주도하신 예수님은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고 물으셨다.
예수님은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다 알고 계셨다.
그 질문은 제자들에게 묻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질문의 근본적인 의도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앞으로 나아와서 그 상황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주려는데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였는데),” 그는 한 아이의 아버지로, 아홉 제자들을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한 중심 인물이었다.
그는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고 대답하였다.
그 아버지는 아들의 고질병을 치료하는 문제로 인해 오랫동안 고심하며 애쓰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였다.
물론 당시에 아버지의 가장 큰 염원은 아이를 예수님께로 데리고 오는 것이었다.
그래서 온 힘을 다하고 갖가지 방법을 써서 그같이 했는데, 예수님은 안 계시고 제자들만 있었다.
그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하였다.
25절을 보면, 그 아이는 말을 못할 뿐 아니라, 말을 듣지도 못하였다.
그 아이가 그같이 된 것은 “더러운 귀신”이 들렸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설명하기를,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 (진다)”고 하였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질병과 귀신에 들린 것 사이의 관계에 대해 몇 가지 사항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 ● 복음서에 나오는 병은 모두 귀신 혹은 악귀에 들렸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질병은 나병이나 앉은뱅이 같이 신체적인 증상으로 인지되고 있는 반면에, 귀신 혹은 악귀가 들린 것은 비정상적인 행동을 포함하고 있다 (5: 1-5 참조).
- ● 복음서에 기록된 병은 죄와 직접 관련 된 것도 있지만 (2: 5), 그렇지 않은 것도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요 9: 1 -3).
- ● 우리는 1 세기 당시에 의학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에 예수님과 다른 사람들이 병자의 어떤 행동을 비정상적인 것으로 생각하고 마귀가 행한 것으로 잘못 해석했다고 주장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 ● 과학적인 사고와 초자연적인 실재를 부정하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는 현대인들인, 우리는 귀신에 걸렸다는 사실을 잘못 이해할 수도 있다.
결론은 오늘날 우리가 귀신이 들렸다는 문제에 대해 이해가 가는 많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할지라도, 악령의 존재를 부인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또한 인간에게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악령의 힘을 의심할 수도 없다.
아들의 비참한 상태를 보고 한 후, 아버지는 계속해서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라고 말하였다.
우리는 그 말에서 아버지의 실망감과 좌절감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라는 말의 문자적인 뜻은 ‘할 만큼 강하지 못하였다’가 되고 있다.
소망이 없는 세대에게 주시는 명령 [마가복음 9장 19 -21절]
9장 19절:
- ●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예수님의 대답은 특별히 아이의 아버지를 포함하여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에게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좀더 구체적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대상이 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은 그들을 “믿음이 없는 세대”로 부르셨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전에 열 두 제자들에게 전도의 사명을 맡겨 둘씩 짝을 지어 보내시면서 “귀신을 제어하는 권능”을 주셨던 일과 그들이 “많은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병자를 고친 일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6: 7, 13).
그런데 지금은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그들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다.
후에 그들이 예수님께 그 이유를 물었을 때, 예수님은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고 대답하셨다 (마 17: 20).
그들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악령을 쫓아내는 능력 사이의 연관성을 깨닫지 못하고, 기도로 주님께 구하는 대신에 자신들의 힘으로 쫓아내려고 했던 것이다.
예수님은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라는 말로 그들에게 두 가지 질문을 하셨다.
모든 일이 지나고 난 지금 우리는 그 대답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당시에 첫 번째의 질문에 대한 대답은 수 개월이었다.
그 후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었다.
두 번째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우리가 깨닫는 것은, 예수님은, 우리가 비록 더딜지라도, 그를 진정으로 믿고 따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신다는 것이다.
마침내 예수님은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고 하셨다.
그 것은 아이 아버지에게 한 말이 될 수도 있고,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일상적인 삶이나 사역 중에서 이전의 믿음이 사라져 버린 것 같이 보이는 상황에 직면해 본적이 있는가? 예수님께서 믿음이 없다고 우리를 꾸짖으시는 것이 옳을 때는 언제인가? 영적 활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새롭게 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자원들은 무엇이 있는가?
9장 20 -21절:
- ●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 ●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그 아이는 그때까지 군중들 뒤쪽으로 밀려나 있었던 것같이 보이는데, 예수님의 명령에 따라 사람들은 그 아이를 예수님에게로 데려왔다.
그러자, 모든 눈들과 관심은 예수님과 그 아이에게로 쏠렸다.
악령은 하나님의 아들 앞에 나오자 마자 곧 격렬하게 반응을 하였다.
그 악령은 아이로 하여금 심한 경련과 발작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 아이는 땅에 엎드려져 구르며 입에서는 거품을 흘렸다.
이 악령의 반응은 다른 악령들이 예수님과 마주 쳤을 때 나타냈던 반응과 유사한 것이 되고 있다 (1: 23-24, 5: 7).
예수님을 만날 때마다, 그들 악령들은 예수님이 그들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신 것을 알았다.
이제 예수님은 아이의 비참한 상황으로 관심을 돌리셔서, 그의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고 물으셨다.
예수님이 그같이 물으신 것은 환자의 병력(病歷)에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아이의 아버지로 하여금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 이었는지를 새롭게 깨닫고 인정하도록 인도하고 있었다.
그는 예수님 외에는 희망이 없었다.
아마도 오랜 세월의 의학적 또는 영적 전문 지식은 아무 쓸모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예수님의 아홉 제자들도 쓸모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니이다”라는 말은 깊은 절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정신적인 혹은 육체적인 장애를 가진 아이들을 양육해야 하는 고통과 슬픔을 겪고 있는 부모들은 그 말의 비통함을 이해한다.
믿음이 없는 세대에게 주시는 명령 [마가복음 9장 22 -24절]
9장 22절:
- ●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그 아버지는 아들의 지속적인 경련 발작에 대해 무시 무시한 세부 사항을 덧붙여 설명하였다.
그 악마는 소년을 땅에 쓰러뜨릴 뿐 아니라, 심각한 신체적 해를 입힐 수 있는 곳에다 던져 넣기까지 하였다.
그 아버지는 말하기를,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라고 하였다.
그것은 비참하고 아무 희망이 없는 상황처럼 보였지만,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는 말로 그는 실낱 같은 희망을 붙들고 이를 고백하였다.
9장 23 -24절:
- ●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 ●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예수님은 그 사람이 한 말을 인용하여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라고 되 물으셨다.
그런 다음 예수님은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하셨다.
우리는 여기서 믿음에 대해 몇 가지 요점을 밝힐 필요가 있다.
- 우리 주님께서 말씀하시고 계신 믿음은 개념화된 일반적인 믿음이 아니라, 오히려 그를 믿는 믿음이 되고 있다. 그 아버지는 “할 수 있거든”이라고 했는데, 그 말에서는 예수님이 하실 수 있는 것이 암시되고 있다.
- 예수님은 기적이 어떤 사람의 믿음이 얼마나 강한가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님을 뜻하셨다. 그것은 믿음의 힘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의 대상의 힘이 되고 있다.
- 나중에 마가 복음에서, 예수님은 참된 믿음의 근본 원리를 강조하셨다.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10: 27)
- 믿음으로 기도하는 것은 항상 하나님의 뜻에 따라 겸손하게 행해진다. 예수님 자신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하게 기도하셨는데,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라 하셨다 (14: 36).
그 아버지는 예수님의 도전에 “곧” 대답하였다. 믿음은 결코 지체하지 않는다.
- ● “내가 믿나이다.” 그는 아들의 치료해 줄 수 있는 예수님의 능력과 권세를 믿는다고 고백하였다.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할 점은 예수님은 아이에게는 믿으라고 하지 않으셨다. 악령에게 사로잡힌 경우에, 예수님은 피해자에게 믿을 것을 요구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사탄의 포로가 되었으므로, 믿을 수 없었다.
- ●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그 사람은 자신이 죄 많은 인간이며 확실한 믿음을 갖고 있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는 자기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을 때, 22절에서 아들을 고쳐달라고 하면서 썼던 “도와 달라”는 같은 용어를 사용하였다.
“주님, 제 안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주님을 믿지 않거나 믿고 싶어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제게서 제거해 주십시오.”
많은 성경학자들은 본 복음서의 저자인 마가가 예수님의 모든 제자들에게 믿음생활에 대한 하나의 모형을 제공해 주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는 처음 지극히 작은 믿음을 가지고 주님께 나아오면서 믿음이 더 많이 자라나야 한다는 고백을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평생 동안 그 같은 고백을 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믿음의 세대에게 주시는 명령 [마가복음 9장 25 -27절]
9장 25 -27절:
- ●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 ● 귀신이 소리를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 ●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예수님이 산 밑에 있던 다른 제자들에게로 내려 오셨을 때만도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고, 제자들은 서기관들과 변론을 하고 있었는데 귀신들린 아이의 일로 인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예수님은 더 복잡해지기 전에 그 아이를 속히 고쳐야 될 긴급함을 느끼셨다.
그는 악한 귀신을 꾸짖어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그 악한 귀신을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되게 하는 귀신으로 부르신 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는 들어가지 말라”고 명령하셨다.
악령은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소리를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였다.
그런 다음 악령은 아이에게서 나왔다.
그 아이는 몸에 너무나 강렬한 충격을 받은 나머지 기절하고 말았다.
많은 사람들은 말하기를 “죽었다”고 하였다.
예수님은 전에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려내셨을 때 하셨던 것처럼 (5: 41), 그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셨다.
그 아이는 일어났다.
말씀을 나의 상황에 적용하기:
- ● 사람을 잘못 신뢰하면 실망을 당하게 된다.
- ● 믿는 자들은 영적 활력을 유지하기 위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 ● 믿음이 없는 것을 고백하는 일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얻는 첫 발걸음이 된다.
- ● 오직 예수님만이 악령의 지배를 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을 회복시켜 주실 수 있다.
그룹으로, 종교에 실망한 다른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에 대해 토론해 보자.
어떻게 하면, 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할 수 있겠는가?
무엇이 지금 당장 예수님을 믿는데 어려운 문제가 되고 있는가?
당신을 인도하여 의심과 두려움을 이기게 해 달라고 예수님께 기도하라.